남궁민이 또 다시 MBC 드라마의 구원자가 됐다. 2021년 '검은 태양'으로 큰 화제를 불러 모으며 MBC 드라마의 존재감을 세웠던 남궁민이 올해는 '연인'이라는 사극으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과연 이 사극의 저력은 무엇이고, 남궁민은 어떤 역할을 해낸걸까.
◆MBC 드라마의 구원자 '남궁민'
올해 MBC 연기대상의 대상은 이미 결정 됐다? 물론 이제 한 해의 반이 조금 지났을 뿐이라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추세를 보면 '연인'의 남궁민이 유력하다는 데 이견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현재까지 최고시청률 10.6%(닐슨 코리아). '꼭두의 계절'이 평균 1%대, '조선변호사'와 '넘버스: 빌딩 숲의 감시자들'이 평균 2%대 시청률을 기록했던 걸 떠올려 보면, '연인'이 거둔 이 두 자릿수 시청률은 MBC 드라마로서는 가뭄 끝에 내린 단비 같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전체 20부작에 이제 겨우 8회가 지났을 뿐이니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 시청률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중심을 딱 잡아주고 있는 남궁민에게 올해 MBC 연기대상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밖에.
남궁민은 이미 2년 전에도 똑같은 성과를 내고 그 해의 MBC 연기대상의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검은 태양'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최고 시청률 9.8%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국정원 블랙 요원의 활약을 그려낸 스파이물로 역시 한지혁 역할을 연기한 남궁민이 사실상 멱살 쥐고 끌고 간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을 위해 '벌크업' 전 66㎏이었던 몸무게를 무려 80㎏까지 올렸던 남궁민은 그래서 등장만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몰입시킨 바 있다. 그만큼 작품을 위해 몸과 혼을 갈아 넣는 노력을 했고, 그것이 당연하게도 결과로 나타난 거였다.
'연인'에서도 남궁민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가져온 이 사극은 드라마 초반만 해도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인 작품이었다. 그건 이 사극이 그리고 있는 인물들인 이장현(남궁민)과 유길채(안은진)가 초반에는 드라마 스토리상 그다지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약점이 있어서다.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각성하고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서사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어딘지 세상물정 모르고 연애에나 몰두하는 인물들처럼 그려졌는데 그래서인지 매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로 초반에 이렇게 힘이 빠지면 시청자들의 이탈이 이어지기 마련인데, 이걸 버티게 해준 건 다름 아닌 남궁민이었다. 그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감이 컸고, 그래서 앞으로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걸 기대하게 만든 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배경의 역사멜로물
역시 기다린 대로 병자호란이 터지고 그래서 인물들이 조금씩 자신들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무모하게도 남한산성에 갇힌 임금을 구해야 한다고 유생들이 의병이 돼 전장에 나갈 때, 이장현이라는 현실적인 인물은 차라리 가까이 있는 이들과 백성들을 구하라고 말한다. 이미 후금과 상거래를 통해 그들의 언어에 능통하고 또 그들의 호전적인 성격이나 문화를 꿰뚫고 있어서 나온 조언들이다. 하지만 결국 이장현을 비웃고 전장에 나간 젊은 유생들은 그 끔찍한 전쟁 통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죽어나간다. 전쟁에는 관심이 없던 이장현은 그러나, 자신이 마음에 두게 된 유길채가 전쟁통에 위험에 처하게 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유길채 또한 전쟁이 터지자 특유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놀라운 생존력을 발휘한다. 동무인 경은애(이다인)와 몸종들인 종종이(박정연), 방두네(권소현)를 이끌며, 오랑캐들의 약탈이 이어지는 그 끔찍한 현장 속에서 기지를 발휘해 그들 모두를 생존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 전장 속에서 방두네의 아이까지 받아내는 유길채는 초반 연애에만 관심 있던 여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비극 속에 인조(김종태)와 소현세자(김무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신들인 최명길(김태훈)과 김상헌(최종환) 같은 실제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 위에 이장현과 유길채 같은 가상의 인물들이 그려내는 운명적인 멜로를 엮어 놨다는 점이다. 특히 전쟁 상황에 유생들과 이장현이라는 인물을 대비시켰다는 점이다. 의병이 되어서 임금님을 구해야 한다는 유생들이 그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충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면, 현재적 관점이 투영돼 탄생한 이장현이라는 가상의 인물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임금을 왜 구해야 하냐며 차라리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현 시대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즉 '연인'은 실제 역사와 가상의 허구가 더해지고,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가 대결하는 서사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비극 예고…드라마 결말은?
'연인'은 병자호란의 시대적 배경을 가진 사극이지만, 그렇다고 이 전쟁 상황으로 전체를 채운 드라마는 아니다. 전체 20부작에서 병자호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건 3회부터 7회까지 정도다. 즉 7회에는 우리가 역사로 잘 알고 있는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으로 전쟁은 끝이 나고 피난 갔던 유길채와 그 일행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물론 죽을 위기에 처했던 이장현도 살아 돌아오고, 유길채가 짝사랑했던 남연준(이학주)도 돌아와 전쟁에 나가기 전 혼인을 약속했던 경은애와 혼례를 치른다. 병자호란이 중요한 시대적 모티브로 쓰인 작품인데, 이처럼 빠르게 종전으로 끝을 맺은 건, 이 작품이 전쟁 상황만이 아니라 종전이 선언된 후에도 계속 이어진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기 위함이다. 그건 종전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의 이야기다.
저들의 말에 능통한 데다 남다른 두뇌와 현실 감각을 갖고 있어 역관의 역할로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에 가게 된 이장현은 그 곳에서도 시시각각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된다. 즉 병자호란이 끝나고 오랑캐들은 돌아갔지만, 끝없는 공물과 노예를 요구하는 저들로 인해 이장현과 소현세자는 적진에서 생존해야 하는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다.
역사에는 소현세자가 심양을 거점으로 그 곳 고관대작들과의 인맥을 쌓고, 남다른 수완으로 농장을 운영하며 그 곳까지 끌려온 조선인들을 그 곳에서 일하게 하는 등 점점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넓혔다고 기록돼있다. 이런 소현세자를 인조가 경계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조선으로 돌아온 지 몇 달만에 소현세자가 사망한 것이 인조와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연인'은 소현세자의 뒤에 이장현이라는 스승에 가까운 인물이 존재했다는 상상을 펼치고 있다. 그러니 소현세자의 활약도 또 끝내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것도 이장현이 앞으로 그려갈 이야기와 무관할 수 없다. 즉 '연인' 또한 비극으로 끝을 맺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예고하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어딘가 새로운 엔딩을 내놓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황진영 작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했는데 결국 이 작품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무엇인가.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것이 아닌가. 이장현과 유길채의 운명적인 사랑이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비극 속에도 어떤 희망 같은 것이 그려지지 않을까. 모든 이들의 삶이 죽음으로 예정돼있지만 그래도 꺼지지 않는 희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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