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전봇대 가시 킬러규제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겠다는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봇대 대못을 빼겠다고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부터 빼겠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붉은 깃발'을 들고나왔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게 했는데 결국 영국 자동차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지칭하는 붉은 깃발을 없애겠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규제를 없애고 나면 또 다른 규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1천507건의 규제를 완화했지만 새 규제가 1천243건 생겼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완화 7천315건을 기록했지만 새 규제 2천866건을 만들었다. 규제 혁파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7대 분야 100개 규제를 담은 책자 '중소기업 선정 킬러규제 TOP 100'을 발간하고 입법 활동에 돌입했다.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에 신음하는 중소기업들이 참다 못해 행동에 나섰다.

책자에 소개된 기업들의 사연은 절절하다. 한 반도체 기계 장비 제조업체 경우 인근의 신규 산단으로 이전을 준비하다 벽에 부딪혔다. 산단이 지정한 입주 업종에 맞지 않아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는 편법을 쓰지 않으면 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산단별 특화 주제나 주요 업종을 두는 것은 이해하지만 원천적으로 업종을 기준으로 입주를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해당 업체의 하소연이다. 한 선박용 구성품 제조업체는 사업장 외국인 고용 한도 폐지를 읍소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하지만 '외국 인력 쿼터제' 때문에 원하는 만큼 외국인을 채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모래주머니' '신발 속 돌멩이'로 규제 개혁 필요성을 언급한 데 이어 '킬러규제' 혁파로 강도를 높였다. 산업단지 입지 규제를 '1호 킬러규제'로 지정했다. 대통령이 규제 혁파를 주문한 것은 바람직하나 공무원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규제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무원들이 규제 혁파에 나서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는 한 '규제 왕국' 오명을 벗기 어렵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