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혹은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잖게 본다. 많은 유학생들을 비롯하여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종종 마주치지만 대체적으로는 무심한 행인들 중의 한 명인 듯 스쳐 지나간다. 그 지나치는 이방인들 중 가끔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타자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대학 동기 셋이서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함께한,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였다. 자리에 앉아 만두전골을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북악산의 짙은 녹음을 배경으로 식당 모서리 쪽 창가에 앉아 있는 외국인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 어린, 다소 수줍은 듯하면서도 단단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찬찬히 훑고 있었는데, 혼자임에도 다른 테이블을 등지고 앉은 게 아니라 모든 테이블을 바라볼 수 있게 앉아 있었다.
식사 중에도 그녀는 종종 나의 시선을 끌었는데, 홀로 한국을 여행 중인 20대 정도의 젊은 서양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일반적인 여행객 혹은 이방인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음미하듯 음식을 천천히 먹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마셔 보는 것임이 분명해 보이는 막걸리까지 자작하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음식 사진 혹은 흔히 말하는 셀카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는다거나 핸드폰을 계속 본다거나 하는, 여행객 특유의 부산함도 없었다.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인 장면으로 각인된 것은 아마 여행자로서의 나 자신의 관성적인 모습에 균열을 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으로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는데, 현지 유명한 식당(그 만두집은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적이 있다)에 가서 혼자 그곳의 전통주를 곁들이며 식사를 즐긴다? 그녀는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고, 타인의 시선에 쫓기지도 않았다. 여행객이었지만 여행객답지 않았고, 이방인이었지만 이방인답지 않았다. 낯섦 자체만을 탐닉하는 태도가 없었고, 현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방인으로서 혹은 완벽한 소수자로서 어떤 위축된 느낌이 전혀 없이 자신의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는 그 모습이 시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나의 가벼운 눈인사와 저절로 지어진 미소가 그녀에게 따뜻한 환대로 느껴졌길 소망했다. 문득 환대(hospitality)의 어원이 품고 있는 이방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고대 어근인 'hosti-pet'에서 hosti는 이방인들, pet은 가능성 혹은 힘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어원에는 낯선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가능성인 동시에 위협(힘)일 수 있다는 함의가 있다. 이방인들의 가능성, 즉 우호적 관계에 주목할 때 필로제니아(philoxenia)를, 낯섦으로 인한 불안이 앞설 때 제노포비아(xenophobia)를 경험하게 된다. 낯선 이들의 정체가 가능성이 될지 위협이 될지 알 수 없으므로 어떤 경우든 환대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비추는 타자로서의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나로서는 낯섦(xenia)을 좀 더 사랑(philo)해 보기로 한다. 이방인이 불러일으키는 낯섦의 정서가 간직하고 있는 존재 확장의 가능성에 베팅한 이 필로제니아라는 말에 계속 기대를 걸어 보기로 한다. 그녀가 나에게 내가 쓸 수 없는 시였듯, 나 또한 이방인으로서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미소가 될 수 있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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