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행보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강성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일 외교원 60주년 기념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뒤로 가겠다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추진에 대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 강경 대응, 일본과 외교, 북한 대응,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참모 임명에서도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최근 40여 년 동안 한국 우파 대통령 중 윤 대통령처럼 분명한 입장을 밝힌 분은 없었다. 민노총 파업, 역사 논쟁, 국가정책, 인사(人事) 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좌파와 가짜 진보들이 들고일어나면 어물쩍 물러났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상당수 국민들은 좌파와 가짜 진보의 주장을 옳은 것으로 인식하게 됐고, 우파적 인식을 은연중에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기게 됐다.

'대한민국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좌파 시각으로 정리되고, 가짜 진보가 담론의 우위를 점하니 '블랙리스트' 같은 종이 쪼가리 하나 없이도 좌파와 가짜 진보들은 시민 단체와 여러 언론을 장악했다.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참여하고, 10세도 안 된 자식들에게 다분히 정치적인 선언문을 읽도록 하는 것도 가짜 진보가 길바닥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대단히 이념적인 정부였다. '이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를 교묘하게 좌파 이념에 물들게 했다. 예컨대,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먼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나와야 한다. 그러자면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줄이고, 개인이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각종 규제와 세금 폭탄으로 기업을 옥죄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해괴한 말로 개인과 소상공인을 정부 손바닥 안에 가두었다. 기업들이 뛰어서 일자리를 만들도록 하는 게 아니라 '주52시간제'를 통한 일자리 쪼개기 방식으로 숫자를 늘리려 했다. 생산과 거리가 먼 공무원 숫자를 대폭 늘렸고, 최저임금보다 많은 실업급여(실수령액 기준), 퍼주기식 복지로 정부만 쳐다보고 있으면 가난하지만 먹고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적어 인적자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땅을 파기만 하면 돈이 나오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부지런히 일하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 나라에서 사람이 게을러지면 희망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기대대로 '20년을 집권'했으면 이 나라는 아르헨티나 꼴이 됐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강성 행보를 '철 지난 이념 논쟁'이라고 깎아내린다. '이분법적 접근으로 중도층 이탈을 부추긴다'는 사람들도 있다. 안이하고 위험한 생각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의 '이념 지형'을 갖고 1960년대, 1970년대로 돌아간다고 가정해보자.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는 기초가 되었던 경부고속도로, 중화학공업, 포항제철 등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좌파와 가짜 진보가 갖가지 거짓말과 선동으로 얼마나 소모적인 갈등을 유발하고 발목을 잡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의 행보를 철 지난 이념 논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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