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가불(假拂) 복지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월급을 미리 당겨 주는 것'을 가불(假拂)이라고 한다. 1970, 80년대 직장 생활을 한 분들 중 상당수는 급전이 필요해 회사 재무담당 부서 직원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가불'을 부탁한 경험이 눈에 선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가불 문화는 성행했던 듯싶다. 신문사에 막 입사한 풋내기 시절, 한 선배가 슬쩍 다가와 회사 자랑 겸 팁을 준 적이 있다. "가불이 필요할 경우 언제든 재무부에 이야기하면 크게 따지지 않고 빌려준다. 이게 우리 공장(신문사를 당시 공장이라는 은어로 표현함)의 장점 중 하나야!"

편의점 CU가 올해 5월부터 전국 1만7천 개 점포 알바생들에게 가불 혜택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옛 추억이 떠올랐다. 가불 서비스를 도입한 모 기업의 경우 104%였던 이직률이 26%로 뚝 떨어졌다는 뉴스도 나왔다. 주로 20, 30대 시간제 근로자가 많은 편의점과 영화관, 커피 전문점, 디저트 카페, 식음료 업종 등이 그 대상이다. 모 디저트 카페는 최근 파티시에 채용 공고를 내면서 월 최대 100만 원의 가불을 대표 복지 혜택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가불은 '비대면'이다. 재무 담당 직원의 안색을 구차하게 살필 필요가 없다. 가불 제휴 업체 앱을 깔고 회사와 급여 계좌를 인증한 뒤, 필요 금액을 입력하면 곧바로 입금된다. 인출 수수료(건당 700원)뿐 '무이자'다. 소액 대출이나 카드 리볼빙을 이용하면 연 20%에 가까운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대박 복지'가 분명하다. 가불의 주된 용도는 병원비나 축의금 등과 같은 긴급 자금(61%), 식료품 구매 등 생활비(32%)였다.

가불 이용자의 43%는 2금융권 이용조차 어려운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로 나타났다. '비대면' 덕분(?)인지 '소액'을 '자주' 당겨 쓰는 현상도 뚜렷했다. 한 달에 5회 이상 가불하는 이용자가 41.7%에 이르고, 1회당 평균 10만 원 이하를 이용하는 사람이 78%에 달했다. '가불 복지'가 벼랑 끝 2030 청년들에게 경제적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불에 대한 인식도 과거처럼 부탁해야 받을 수 있다기보다는 '내가 일한 대가를 받아가는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우리 청년들이 하루빨리 '가불 인생'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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