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멀다고 생각했다. 젊기에. 그렇다고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는 점차 가족을, 지인을 하나둘 떠나보낼 나이가 됐고,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을 맞이하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 되뇐다.
예견된 죽음이 있을까. 최근 예고 없는 죽음이 불쑥 찾아온다. 먹고 살고자 들어간 빵 공장, 시신 수습을 위해 뛰어든 급류…. 뉴스에는 연일 갑작스러운 사건·사고로 죽음을 맞은 청춘들의 소식이 잇따른다.
특히 하루가 멀다고 전국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묻지마 흉기 난동 소식은 많은 젊은이에게 '나에게도 언제든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아직은 멀게만 했던 죽음이 자꾸만 가깝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어느 때보다 죽음과 삶이 가까이 느껴지는 이 시대. MZ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눈물이 핑~ 영정사진 찍어보니
"20대 내 모습, 30대 내 모습, 40대 내 모습, 50대 내 모습을 모두 영정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MZ세대 A(29) 씨가 20대 초반부터 다짐한 목표다. 새로운 나이대가 시작되는 날에는 그 나이의 자신 모습을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A씨의 이런 생각은 최근 더 강해졌다. 흉악범죄는 물론 젊은이들의 사고사 소식을 연일 뉴스에서 접하면서다. 그는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꽤 오래 전부터 영정사진 찍기에 나섰다. 한창 영정사진 찍기 유행이 불었을 2018년엔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연애, 결혼, 주택 구입 등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각박한 현실 속 좌절감을 치유하려는 시도로 젊은이들은 영정사진 촬영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A씨처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하고자 미리 사진을 찍는 등 이유가 더욱 다양해졌지만, 영정사진 촬영에 나서는 본질적인 이유는 엇비슷하다.
죽음을 떠올리면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고 싶어서 혹은 되뇌고 싶어서다. 영정사진 촬영은 우리가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자극제가 된다.
정말 그럴까. 지난 1일 MMM팀 심헌재 기자가 영정사진 촬영에 자원했다. 다음은 촬영에 나선 심 기자의 체험기.
영정사진 찍기 하루 전. 저녁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도보로 딱 5분 거리. 영정사진 촬영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마지막 아닌 마지막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등등.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옷이다. 대개 남자들은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 등을 하고 찍은 경우가 많았다.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가장 평범한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부담없이 입는 옷을 입고, 편한 마음가짐으로 촬영에 임하는 것이 가장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장 대신 평소 자주 입는 남색 반팔 니트 옷을 챙겨 입기로 했다.
촬영 당일, 평소에 잘 바르지 않던 선크림을 발랐다. 거울 앞에 서서 꼼꼼히. '사진관에서 보정을 해주겠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뭔가, 단장을 깔끔히 하는 것이 나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관에서 회사 동료들을 만났다. 영정사진을 찍는다 하니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일부러 더 밝고 뚝딱거리게 행동했다.
표정에 신경을 썼다. 웃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사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입을 앙 다물고, 눈은 좀 크게 뜨자, 입꼬리는 좀 올려야 하나? 정도의 생각만 했다. 기분이… 묘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묘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죽음을 앞두고 영정사진을 찍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그 순간 부모님과 연인, 친구, 동료 등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 삶에 대한 생각보다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났다.
촬영이 끝났다. 막상 영정사진 속 내 모습을 보니 슬펐다. '죽고 싶지 않다'보단 아직은 좀 더 살아보고 싶었다. '내가 아직 좀 더 살고 싶구나, 삶에 대해 욕심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정사진은 봉투에 넣어진 채, 내 방구석에 있다.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아직은 영정사진 속의 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죽음의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바라봤다. 앞으로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스스로도, 타인에게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영정사진 촬영을 진행한 김대홍 혜성사진관 대표는 "영정 사진 찍으러 다양한 나이대의 손님이 찾아온다. 젊은이들도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을 때 뭘 영정사진으로 써야할지 허둥대는 것보단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낫지 않겠나"며 "가끔 군인이나 수녀 등 특정 직업군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와서 영정 사진을 찍는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있었는데 마치 진짜 죽음을 앞둔 사람이 영정사진을 찍는 것처럼 슬퍼 보였다. 그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죽음 대비하며 살아가는 MZ들
영정사진뿐이랴. 일상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죽음을 대비하는 MZ세대들도 많다.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신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외출하기 전 무조건 이부자리나 신발 등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미리 유서를 준비해 두거나, 장기기증을 서약하는 것은 물론 필요 없는 물건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내다 팔며 짐을 간소화한다.
즉, 웰다잉(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B(37) 씨= 외출하기 전, 이부자리나 신발 등 집의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돈해 두고 나오는 습관이 있다. 오늘 집을 나서는 이 길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더욱이 요즘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위험이 더 커진 것 같아 가끔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빈도가 늘었다. 미리 가족이나 남자친구에게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지 말해둬야 하는 게 아닐까? 유서를 미리 써둘까? 하는 쓸 데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쓸 데 있는 고민들이 생겼다.
C(35) 씨= 이태원 참사 이후 죽음이 성큼 다가왔다고 느껴졌다. 그 이후부터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중고마켓에 팔거나 버리면서 나름의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 중이다. 하루 아침에 죽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D(26) 씨= 묻지마 범죄 뉴스를 보다가 어머니께 "나 죽으면 장기기증 해달라"고 말했다. 예전부터 장기기증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죽음이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확실히 정했다. 빠른 시일 내에 장기기증 서약을 신청하려고 한다.
E(31) 씨= 최근 이별과 죽음이 소재가 되는 문학 작품이 많이 나온다. 현시대 상황을 반영한 거겠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이들에게 갑자기 닥칠 죽음을 어떻게 하면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요즘 고민이다. 물론 내가 죽으면 이런 생각을 할 리는 없겠지만 막연히 두렵기만 했던 죽음에 대해 나만의 태도를 가지고 싶어 문학작품을 많이 읽고 있다.
죽음에 대해 잘 대응하고자 직업을 찾아 나서는 경우도 있다.
최근 열풍 불고 있는 'MZ세대 장례지도자'다. 크고 작은 참사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MZ 세대는 죽음에 직접 대응하고 도움이 되고자 발 벗고 나섰다. 누군가의 소중한 이들을 잘 떠나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대구만 하더라도 동구의 한 장례지도사교육원에서 지난 2월부터 시작된 3개월 간의 장례지도사 교육 과정에 등록한 16명 중 6명이 20, 30대였다.
그래서 우리… 어떻게 해야 해?
이처럼 죽음과 이별은 아무리 겪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명해진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할 것. 마음껏 즐기고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할 것.
슬픔의 이면에는 어떤 단단함도 있어서
신발을 꺾어 신고서라도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슬픔에게 中 -권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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