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28일 열린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에서 고광준 감독의 '파지'가 국내경쟁 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영화는 15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인 데다 등장인물도 적고, 이야기의 무대도 작은 고물상으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인간들의 희노애락은 물론 한국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고철값이 폭락한 어느 때 파지의 무게라도 불려 압축장에 팔아보려한 고물상 사장과 파지를 싣고 고물상을 찾아오는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물상 사장은 청년에게 파지 값을 속이고 낮은 금액을 주고, 청년 역시 편법으로 파지의 무게를 늘려가면서 서로가 속고 속이는 전개가 이어진다.
영화 '파지' 제작은 고 감독의 불안감에서 시작됐다. 2021년쯤 불현 듯 자신의 존재가 더 이상 쓸모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길바닥에 버려진 종이박스와 그걸 주워 담는 할머니를 보게 됐다. 그 광경이 고 감독에게 크게 와닿았다.
고 감독은 "쓸모 없어져 버려진 저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막연하게 단편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며 "서울에서 단기 속성으로 영화제작 전반을 배워보는 워크숍에 참여했고 그때 수료 작품으로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가 '파지'였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 무대를 작은 고물상으로 잡은 건 이야기의 장소나 배경이 '미지의 장소' 같은 곳에서 시작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장소, 흔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장소,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장소에서 '우린 각자 다른 쓸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그러니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고 감독은 "'파지를 보고 나면 아이고 저 바닥도 속고 속이는구나. 정말 몇 푼이나 된다고…싶다. 하지만 옆에서 보기에 그 몇 푼은 별거 아니지만, 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돈도 돈이지만 돈을 떠나)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며, 들통나면 맞짱까지 가는 전투이며, 속이는 줄 알면서도 그러려니 살아야 하는 묵언수행의 공간이기까지 하다' 파지를 보고 선배가 전해준 감상평이다"라며 "이 감상평에 깊이 공감한다. 파지를 본 관객분들에게 '다른 곳도 그러지 않나요?'라고 반문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파지'는 독특한 영화 연출로도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몇몇 장면에서 고물상 CCTV 화면을 재치있게 활용해 시각적으로 독특한 미장센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유운성 영화 평론가는 심사평에서 '단서들을 제시하되 결코 일부러 강조하거나 반복하는 법은 없는 대담한 연출'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고광준 감독은 "이 영화는 사실 여러 겹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안과 밖, 그뿐만 아니라 밖을 담은 cctv가 있고 안을 들여다보는 창문이 있다. 이 모든 건 길에 버려진 네모난 종이박스로부터 생겨난 아이디어였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고 감독은 차기작으로 '살면서 단 한번도 승리해 본 적 없는 사람'에 관한 장편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내년 봄이나 여름엔 화기애애한 단편영화를 찍을 계획이다.
끝으로 고광준 감독은 한국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역 영화제 활성화를 부탁했다.
고 감독은 "영화는 관객들의 관심으로 '다음'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관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만족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더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됐으면 좋겠다"며 "이번 대구단편영화제 덕분에 처음으로 대구에 왔다. 식당 아주머니, 거리에서 본 젊은 사람들 모두 활기가 넘치고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역 영화제가 있었기에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역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 상영을 넘어 넓은 의미에서 좋은 영향을 준다. 지역 영화제가 더욱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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