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역을 관통하는 기차길 옆 골목에 세워진 작은 극장, 공연은 한국 사회 동시대 소리로'
지난해 동아연극상 특별상을 받은 신촌극장(新村劇場, 극장장 전진모)은 특별한 공연장이다. 신촌극장은 연세대학교 정문 건너편 이화여대로 넘어가는 기찻길 아래 굴다리 옆 한 빌라 옥상에 마련된(2017) 17평의 작은 극장이다. 극장장 전진모는 기존 공연예술의 경계와 거리를 두고 실험적인 형식의 연극, 무용, 시각예술과 다원예술을 신촌극장에 올리며 강렬하게 그 존재감을 각인시켜 오고 있다. 해마다 창작자 중심의 공연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만 해도 <바투 행위하다>(배하랑, 임병수, 장하림), <애도 아니고>(김동환), <어느 날 내 뇌가 사라졌다>(장샘이), <생일파티>(유지수), <나른한 오후>(김기일), <배꼽점>(엄지은), <이름을 부른다>(김바리, 주나모), <불멍>(여신동), <경쟁뎐>(문병재), <씨어터로이드는 메모리 양의 꿈을 꾸는가?>(송수현, 최세리), <부로드웨이(富'roadway)>(조다은), <어부의 핵>(장한새) 등 신촌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공연 형식을 선보였다. 전진모 극장장 말대로 "공연예술들이 다채롭고 진취적인 장르 불문의 작품들이 창작자 중심의 표현공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매년 작가(창작자) 중심으로 라인업되어 공연이 운영되고 있다." 공연 소식을 알리는 신촌극장의 페이스북 공연 포스터에는 작품 제목과 작가 혹은 연출 등의 창작자 이름이 함께 표시되어(<애 개 아파트 X 이오진>처럼) 신촌극장이 창작자 중심의 공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창작자들을 전진모 극장장이 섭외해 매년 20~25편의 공연을 올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작은 극장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한계, 극장 주변은 생활 거주 밀집 지역으로 소음과 기차 소리 등 공연 장소로서의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연 형식을 과감하게 탈피한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인 공연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촌극장'의 특별한 공연 공간의 위치를 신촌으로 한정한 것은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극회 출신들이 모여 연극을 만들던 인연이 신촌극장과 전진모 연출 정신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전진모 극장장은 "극장의 한계와 공간의 제약, 주변의 약점들을 신촌극장은 기꺼이 수용해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진행해 주실 수 있도록 함께 해오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신촌극장은 작품보다 작가(창작가)분들이 현재적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창작 작업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특별한 극장 공간에, 올려진 이번 공연은 한일 합동 다도연극 <주코의 암자(珠光の庵>(한국 공연 프로젝트 매니저 최은미)이다.
◆ 일본 선다도의 역사가 된 무라타 주코와 잇큐 선사
<주코의 암자>에 등장하는 주코(珠光)는 2500년경 한반도와 중국 등지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의 후손이다. 스님이 되기 전 세속에서 부르던 속명이 무라타 주코(村田珠光, 1423∼1502)인데, 출가자 속명을 사용하지 않고 '주코'(슈코)로 정착했다. 주코는 11세에 나라현 칭명사(称名寺) 절로 출가해 선과 다도 예법을 일체시킨 선다도를 개척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나이 20세에 절을 떠나 교토의 작은 암자에서 차를 시작하고 30세에 대덕사 선승으로 참선해 득도한 후 꽃꽂이와 미술품 감정을 배웠다. 이때부터 일본 최고 권력자들에게 차의 예법을 가르쳤다고(박민정, <일본 다도 예법>)기록되어 있다. 주코가 활동하던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1336~1573) 통치 시대였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가 아시카가 가문에 의해 쇠퇴하면서 일본 역사의 정치는 무로마치 막부시대로 전환되는데, 가마쿠라 시대 일본에 전파된 선불교의 영향 아래 있었고 막부와 임제종 불교는 정치적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모종의 결탁 관계를 이어가던 시기였다. 그만큼 불교가 정치적으로 활성화되고 권력의 보호 아래 사찰을 운영하는 오산십찰(五山十刹) 제도가 일본 전역에 확산된다. 오산십찰 제도란 5개의 대표적인 사찰을 정하고 그 아래 10개의 사찰을 세워 관리하는 제도다. 당대 대표적인 사찰로는 교토의 5대 사찰로 꼽히는 교토오산(京都五山)의 천룡사(天龍寺)가 있었다. 당시 오산 선승들에 의해 막부시대 일본의 차, 문학, 예의 문화가 발전되었고, 차를 통해 몸과 마음을 씻어내고 일체시키는 다도(茶道)가 유행하게 된다.
무라타 주코는 일본 와비차(わび茶, 草庵の)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센노 리큐(千利休, 1522~1591)가 정립한 와비차는 차와 선(禪)의 정신을 일체시키는 다도 예법의 하나이다. 일본 다도의 고전인 <산상종이기(山上宗二記)>는 주코의 선다도 역사이기도 하다. 눈치를 챘겠지만 <주코의 암자>는 무로마치 막부시대 파계승이 되어 세속으로 내려와 '투자 놀이(차의 품질, 맛, 차 품종을 겨루는 놀이)'에 빠져 방황하던 주코가 일본 대덕사의 잇큐 선사를 만나면서 '선'을 배우고 차와 참선을 일체시키는 <다선일체(茶禪一體)>를 전파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공연은 주코가 대덕사 암자에 머물며 잇큐(一休) 선사와 다도 예법을 전파한 즈음의 시절부터 시작되는데, 일본 극단 '위성'이 이를 일본 다도의 예법을 체험해 보는 형식의 연극으로 구성했다. 극단 '위성'은 1995년 6월에 설립되어 교토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다도 예법을 들고 무대와 극장이 아닌 곳(신사, 교회, 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해오고 있다. 일본 다도 문화의 역사를 넣고 관객들에게 '마차'를 따라주며 다도의 역사와 전통 예법을 체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공연한다. 잇큐 선사(1394~1481)는 임제종 불교 스님으로 무로마치 막부시대의인물이다, 아버지는 일본의 100대 천황 고꼬마쓰이며 그의 어머니는 1392년에 멸망한 고려 궁녀이다. 원효 스님처럼 일본의 대중적인 존경을 받는 고승이다. 쇼군과 권력 전쟁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 한 아버지에 의해 잇큐 선사는 다섯 살에 일본 다도의 종가인 대덕사 절로 보내졌다. <주코의 암자>는 다도 예법을 연극적 구성으로 개발하기 위해 주코와 잇큐 선사 두 인물을 흥미롭게 대비시키고 있는데 작품이 독특하다.
◆ '차의 예법'으로'다선일체'를 배우는 <주코의 암자>
입구부터 다다미로 된 차 방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신발을 벗고 20여명의 관객만 입장한다. 극장 공간은 절에서 스님의 불법을 듣는 것처럼 무대를 마주하고 벽에 둘러 좌선을 하듯 앉도록 구성된다. 극 초반에는 주코와 잇큐 선사를 중심으로 하는 다선일체의 일본 선다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첫 장면부터 한 암자에서 벌어지는 '투차놀이'로 시작된다. 잇큐 선사로 분한 배우가 희극적 해설로 투차놀이 방식을 설명하며 극을 진행시킨다. 그는 스스로를 '오늘 투차놀이를 도맡은 주지 잇큐스님'으로 소개한다. '규칙도 없는 문제를 재치로 해결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빵 터진다. 목판으로 본(本)과 비(非)를 표시해 놓고, 교토 도가노오 고잔지(高山時) 절에서 딴 차는 본(本)으로, 그 외 다른 지역에서 딴 차는 비(非)로, 본차의 맛을 차를 마신 뒤 본(本)과 비(非)를 맞추는 놀이 방식이다. 무대에서 잇큐 선사는 다도 예법 등을 유쾌하게 설명하고, 절의 기녀(遊女)도 등장한다. 얼굴을 가린 장군(将軍)과 동자승(小坊主)이 투차를 하고 승리는 장군에게 돌아간다. 동자승과 얼굴을 가린 장군의 투자 대결로 절 재산의 절반을 잃게 된 잇큐선사는 우스꽝스러운 주문을 외우고는 투차의 장인 주코를 등장시킨다.
이미 많은 차를 마신 장군을 향해 주코는 "그쪽이 한 잔 마실 때마다 저는 열 잔을 마시겠습니다"라며 여유를 부리고 투차에서 질 경우 절의 '본존상'을 거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면서 극적 재미가 고조된다. 이어 투차놀이의 절대 지존을 가리기 위해 무로마치 막부 장군(얼굴을 가린 장군)과 주코가 투차놀이의 진검승부를 벌이는데, 승리는 주코에게 돌아간다. 잇큐는 투차로 얻은 돈을 '관세음보살의 덕으로 장군을 향해 덕을 받으라고' 말하고 주코는 '반드시 이길 것을 아는 승부에서 상대방을 부추겨 투차를 하는 것은 사기'라고 응수하면서도 불교 임제종의 고승 잇큐를 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한다. 투차놀이를 진행하면서도 잇큐는 극 중 인물에서 빠져나와 장면에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장면의 해설자로도 등장해 극의 몰입을 희극적으로 차단한다. 일본 다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불교와 다선일체의 선다도 개념을 두 인물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극적인 감상보다는 극의 흐름을 통한 이해와 체험의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주코의 추억 속의 여자(사요, 小夜)가 등장해 투차로 방황하는 주코를 진정한 스님으로 되돌리려 하고, 잇큐와 대화를 하며 원효스님과 중광스님의 기행처럼 잇큐의 불심과 재치있는 캐릭터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번 공연에서 특징적인 인물은 극 중 인물들의 분신처럼 등장하는 고다마(木霊)와 야마비코(山彦)로 분한 메아리(정수연, 최은경, 설재서)들이다. 고다마는 일본 신화에서 나무에 깃든 신이다. 산을 향해 '야호'라고 소리를 내면, '야호'라고 돌아오는 메아리를 고다마 신의 소리로 생각하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야마비코'는 산에 깃든 신이다. 이 공연에서는 일본의 두 신화적 인물을 등장인물 메아리로 활용해, 극을 한국어로 전달하도록 했고 극 중 인물로써 감정과 제스츄어도 표현했다. 일본인 배우들이 분한 극 중 인물과 한국인 배우들인 연기한 메아리의 앙상블과 리듬, 대사 톤의 효과가 절묘하다. 마지막 장면은 깨달음을 얻은 주코가 투차의 방황을 끝내고 잇큐선사를 통해 좌선을 배우는 것으로 끝난다. 이어 잇큐는 30분 정도 관객들이 직접 다도를 체험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좌선에 대해 설명하면서 무대 바닥에 누워 "편안하게 앉는 게 좌선이야"라는 잇큐의 대사에 관객들은 키득거리며 또 한번 '빵' 터졌다.
단 맛의 다과를 나눠주고 일본 다도를 직접 체험하게 하면서 공연은 끝나는데, 잇큐는 익살스럽고 재치있는 인물이면서도 때로는 진지함으로 불심을 나타내고 때로는 중광스님처럼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일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희극(코미디)의 맛을 살린 연극적 다도체험을 할 수 있다. <주코의 암자>가 연극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던 점은 고마다와 야마비코라는 일본 신화 인물을 극 중 인물인 메아리로 활용한 설정 방식이다. 극의 내용을 한국말로 번역 전달하지 않고, 극 중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하지만 <주코의 암자>의 의미와 공연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신촌극장이 일본 극단과의 협업을 비롯, 변방의 다양한 작품을 수용하며 한국 사회의 뜨거운 주제를 공연으로 생산하는 극장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나오는데 암막 커튼에 종이로 써놓은 '계획을 하면 모든 계획이 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신촌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한 번쯤 꼭 볼만하다. 다만 한정된 관객만 입장시킬 수 있기에 조기 매진될 수 있다. 신촌극장 페이스북을 통해 자세한 안내가 제공된다.
|전진모 신촌극장장 미니인터뷰
─골목 빌라 옥탑에 극장을 만들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사는 빌라의 옥탑을 골랐다기보다, 지금 장소가 조용한 골목에 위치해 있고 경제적인 조건에 부합했다. 공연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고민이 있었지만, 제약과 한계를 유연하게 잘 받아들인다면 무리없이 하나의 '극장'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라 생각했다."
─'신촌극장' 작품들의 특별함은.
"작가(창작진)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공연하고 있다. 치열하고도 실험적인 방향을 모색하면서도 신촌극장 작품과 공연에는 편안하고 소박한 말하기도할 수 있는 극장공간이다."
─대학로 작품들과 차별화된 점이 관심을 받고 있다.
"여러 물리적인 한계에서도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창작자만의 실험적인 창작방식의 방법들(론)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신촌극장과 작품공연들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 규모 관객으로는 운영이 어렵지 않나?
"지금의 극장규모 덕에 어려움 없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원금 없이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고민해서 만들어진 극장이다.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 정도가 된다면 미련없이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 말은 지원금으로 운영되면 신촌극장 만의 창작방식을 고집할 수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 고집스러운 운영방식이 좋은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신촌극장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대단한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자잘한 변화들이 중요하다. 이러한 작은 변화에도 신촌극장이 유지되고 좋은 공연으로 잘 흘러간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범위에서 조금씩, 천천히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다."
전진모 극장장은 빌라 3층 극장입구에서 입장하는 한 사람씩 공연책자를 나눠주며 안내를 했고 공연 뒤 극장과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신촌극장'은 많은 관객들로 붐벼 제작비와 극장운영 재정이 넉넉해지는 공연을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촌극장의 특별한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소수의 관객만으로도 신촌골목의 명소가 된 극장장은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부자가 된 것 처럼 보였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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