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골만의 저서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장기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EQ라는 용어가 학계, 기업, 학부모들에게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다. 감성지수(EQ)는 지능지수(IQ)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뜻한다.
지금은 이론과 논리뿐만 아니라 남다른 감성과 감각을 가진 조직과 개인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감성 시장의 시대다. 감성과 감동은 논리나 이성보다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감성과 이성은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중시되거나 강조되면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루소는 아동기에는 '감성 교육', 그 이후 소년기·청년기에는 '이성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옷을 입은 바람이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비롯해 크고 작은 모든 이슈의 향방을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류 열풍도 우리의 감성적 성향과 무속적 상상력이 결합된 결과라고 말한다. 서울대 김상환 교수는 "무속적 상상력의 특징은 감성적 충동과 즉흥성에 있다. 여기서는 형식적 균형을 깨는 파격, 비대칭을 낳는 역동적 흐름이 관건이다. 무속적 역동성은 단순히 질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어떤 무질서의 질서, 비형식의 형식이다. 물론 이런 역동성은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으로 빠져들기 쉽다. 무속적 상상력이 통제 불가능한 광기로 번져갈 가능성, 이 끔찍한 위험성이 과거 한국 문화의 진보와 좌절을 모두 설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너무 쉽게 흥분하고 감성에 지배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오히려 차분한 이성적 사고가 더 필요하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성이란 본능·충동·욕망 등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도덕적 법칙을 만들어 그것에 따르도록 의지를 규정하는 능력, 올바르게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성은 욕구 또는 본능을 가리키며, 그것은 이성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라고 했다. 괴테와 실러 등이 주도한 독일의 질풍노도 운동은 자연, 인간의 개성, 감성 등을 앞세운 낭만주의 운동으로 그때까지 유럽 지성계를 지배하던 계몽주의의 합리성, 즉 이성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확고한 뿌리 없이 폭풍처럼 밀어닥친 낭만주의라는 일시적 현상은 이성을 꺾을 정도로 지속적인 위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가을이 왔다. 모두가 책을 잡고 차분하게 사색하는 국민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독서를 통해 다양한 추체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자기 하나만의 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독서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게 하여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인 범주 안에서 성찰하게 해 준다. 책을 얼마나 많이 보느냐의 문제보다 어떤 책을 보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독서는 개인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에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 "감성 없는 이성은 공허하고, 이성 없는 감성은 맹목이다"라고 한 칸트의 말을 우리 모두가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성 없는 감성'이 맹목적인 편가르기, 증오와 혐오, 극단적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가을 하늘처럼 우리의 생각이 깊고 높아지길. 우리는 지금 너무 들뜬 사회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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