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장부는 투명유리 안에

최경철 논설위원
최경철 논설위원

국가 부도 사태였던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 부도로부터 시작됐다. 그해 1월 한보가 부도를 냈다. 같은 해 6월엔 기아자동차가 부도 직전에 몰렸고 그다음 달엔 아시아자동차가 자금 위기에 봉착, 대규모 감원을 발표했다. '대마불사' 논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당시 김영삼 정부는 "기업들을 살려야 한다"며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신인도가 추락, 그해 말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최악의 사태가 초래됐다.

'분식회계'라 불리는 기업들의 회계 부정이 외환위기의 도화선이었다. 한보철강이 6천920억 원, 기아자동차가 3조148억 원, 아시아자동차가 1조5천588억 원 등 순자산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1997년 드러났다. 이듬해에는 한때 건설업계 1위를 다투던 동아건설의 7천140억 원 규모 분식회계가, 2000년에는 세계 경영 신화를 쏘아 올렸던 대우의 자산 뻥튀기 분식회계가 밝혀졌다. 대우그룹 12개 계열사 분식 규모는 무려 22조 9천억 원에 이르렀다.

요즘에도 분식회계가 덜미를 잡히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회계 등에 대한 기업 공시 의무를 강화한 것은 물론, 회계 부정을 사회악으로 규정해 강력한 처벌을 해 온 덕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래 몸담았던 검찰의 특수부가 분식회계를 파헤치면서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조합원 수 1천 명 이상 대형 노동조합은 회계를 공시해야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가 당초 계획보다 3개월 빠른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 노조 조합비 세액공제는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노조 활동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노조가 조합비를 어떻게 쓰는지 공개하지 않아도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 공시 의무를 이행해야만 혜택을 받는 다른 기부금과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자본시장에서는 공시제도가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돼 공시 위반에 대해서는 행정·형사 제재에다 손해배상책임까지 묻고 있다. 그런데 '자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노조가 공시를 하지 않는다면 노조 스스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뿐이다. 사용자든, 노조든 회계 장부는 투명유리 안에 둬야 한다.

최경철 논설위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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