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17>글자와 그림이 융합된 강력한 윤리적 메시지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작가 미상, '문자도(文字圖) 충(忠)', 종이에 채색, 69.7×34.6㎝,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민화 '문자도 충'이다. 문자도는 말 그대로 글자와 그림이 섞여있는 글자그림이다. 글자의 일부는 그림으로 모양을 대신했고, 일부 점획은 검은 먹색으로 살려 놓았다. 그려진 형상은 '충성 충(忠)'과 연관되는 역사적 위인의 이야기나 고사성어를 상징한다. 그래서 문자가 지니는 추상적 힘과 이야기를 핵심화한 이미지의 설득력이 결합해 '충'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게 된다.

점획을 대신한 상징물이 어떤 의미인지 위쪽에 써 놓았다. '용봉직절(龍逢直節)', '삼려단충(三閭丹忠)', '어변성룡(魚變成龍)', '하합(蝦蛤)'이다.

용봉직절, 삼려단충은 중국의 충신인 은나라 관용봉과 전국시대 초나라 삼려대부 굴원의 고사다. 관용봉의 곧은 절개는 '중(中)'의 가운데 획에 대나무 마디로 나타냈고, 굴원의 일편단심은 용의 머리 위쪽에 굴원의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어변성룡은 황하의 용문협곡을 뛰어넘은 잉어가 용이 된다는 등용문 고사로 과거에 급제해 '충'을 다한다는 뜻이다. 잉어의 입에서 용이 나오는 설정으로 어변성룡의 극적인 장면을 기발하게 나타냈다.

용은 비늘을 세 줄로 꼼꼼하게 반복했고, 등지느러미와 뱃살의 굴곡은 번갈아 색을 달리하며 하나하나 정성들여 그렸지만, 좌우의 두 발은 화가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베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용의 머리에 있어야할 뿔은 몸통에서 좌우로 솟았고, '중(中)'의 왼쪽 가운데에 있는 것은 여의주의 불꽃으로 보이는데 정작 여의주는 없다! 용의 몸통은 하나로 이어지지 않고 용의 얼굴은 정면이기도 하고 측면이기도 하다.

제일 아래의 좌우에 '심(心)'의 점을 대신해 그려진 새우와 조개는 '새우 하(蝦)'와 '대합조개 합(蛤)'의 발음이 화합(和合)과 비슷해 군신의 화합을 뜻한다.

'문자도 충'은 유교의 도덕규범을 압축한 '효제충신 예의염치' 8글자로 구성된 8폭 병풍의 셋째 폭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나라에 대한 충성, 친구와의 신의 그리고 예절과 의리와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뜻한다. 8자도, 효제문자도, 윤리문자도라고도 했다.

윤리문자도가 중심인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길상문자도가 대부분이다. 중국에서는 '수(壽)'자, '복(福)'자가 새해맞이 그림으로 유통되며 장수를 누리기를, 복 많이 받기를 기원했다. 길상의 뜻 보다 개인으로서 또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바람직한 가치를 지향한 것이 우리나라 문자도의 특징이다. 민화 문자도는 교육적이면서 이야기성이 풍부하고 장식성도 뛰어난 그림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겐 무엇보다 웃음을 주는 매력이 있다.

미술사 연구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