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의롭고 명예로운 해병대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가 사건 발생 50여 일이나 지나서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6일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채 상병 순직을 추모하는 49재가 치러졌지만, 여태 책임자 처벌은커녕 책임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불거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수사 외압 또는 항명 논란은 해병대 정신 및 군의 사기와 직결된 것으로, 수사와 함께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법을 통해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경찰은 지난달 24일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데 이어 지난 7일 채 상병의 복무지인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해병대 1사단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지난 7월 19일 급류가 몰아치던 경북 예천군 보문교 일대 내성천에서 어떻게 구명조끼나 로프 등 안전 장비를 전혀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것인지, 어떤 경로로 어떤 지시가 오갔는지 낱낱이 밝혀야 하겠다.

외부 눈치를 보지 않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고 철저한 수사로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의혹을 밝히고 책임을 제대로 물을 것을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입건된 박 전 수사단장을 둘러싼 의혹 규명도 국민적 관심사다.

박 전 단장은 7월 30일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해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을 비롯한 지휘부 8명에게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한 조사보고서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지난달 2일 경찰에 이첩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즉시 보고서를 회수하고 박 전 단장을 보직 해임한 데 이어 군 검찰은 지난달 30일 항명 등의 혐의로 박 전 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박 전 단장은 사단장과 여단장을 뺀 대대장 이하로 과실치사 혐의를 한정하라는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국방부 검찰단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시킨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한 대통령실 개입 논란에 대해 윤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국방부도 임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 전 단장과 대통령실 양측 중 한쪽은 명백히 허위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군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사단장이 상부의 명령을 부당하게 거부했거나 대통령실이 사망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면 모두 국기 문란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눈길을 모으는 것은 국방부 장관이 결재한 조사보고서가 경찰에 이첩됐다 다시 회수됐다는 점, 경찰에 재이첩된 보고서엔 당초 박 전 단장이 조사한 내용과 달리 사단장과 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가 빠졌다는 점 등이다.

지난달 30일 국방부 검찰단이 제출한 박 전 단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해병대 부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왔다는 해병대 사령관의 진술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장관의 이 지시가 정당한 명령인지, 부당한 외압인지 판단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초점이 될 수 있겠다.

이번 두 사건에 대한 철저하고 성역 없는 수사로 한 해병대원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해병대 장교의 명예가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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