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모시고 전답 한 뼘 물려받은 것 없이 한평생 지게와 삽과 소달구지로 논밭을 일구어 육남매 공부시키시고 홀연히 가신 아버지!
열일곱에 시집와서 잠 한숨 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밥한술 제대로 드실시간도 없이 집안밖일 거두시다가 가신 어머니!
나는 당신을 생각할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딸자식 공부시켜야 헛것'이라는 통념과 주변의 비아냥에도 사람구실을 할려면 배워야 한다며 대도시에서 학업을 이어가게 해주신 두분의 결정을 생각하면 또 다시 눈물이 납니다.
이제 저도 칠십이 되어 되돌아보니 가장 잘 한 일이 부모님과 육남매 모두 대구집으로 모셔 금혼식을 해드린 것 같아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1919년생이신 아버지! 야학으로 배운것은 서당에서 한자와 한글 그리고 산수를 배워 지게작대기로 땅에 수없이 그리며 익혔다는게 전부라고 말씀하셨고 농삿일을 하다보면 세상의 이치가 모두 그 속에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골마을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을 주관하시고 해결하시는 존경의 대상이셨습니다만 대도시 하굣길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남루한 차림의 시골노인이었습니다. 어깨에는 쌀가마와 양손에 무거워보이는 보자기를 들고 자취집으로 향하는 아버지를 도와드리지 못하고 친구들의 눈을 피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것이 한이되어 가슴에 묻어두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한 시대에 삿된 재물을 탐하지 말고 의롭게 살아라라고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아버지의 말씀,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언제나 인자하시고 여유롭고 유머스럽기까지하셨지만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시면 여지없이 정색을 하시고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에 반성문을 쓰게 하시어 스스로 뉘우치고 깨우치게 하셨던 아버지는 표정만으로도 회초리보다 엄하셨고 항상 큰스승 이셨고 나침판이 되어주셨습니다.
소설 '25시'의 저자 게오르규는 1974년 한국을 떠나면서 "평범한 한국의 농부의 얼굴에서 이 나라와 인류의 미래를 보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게오르규가 만난 그 평범한 농부가 나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저물어간다고 판단하실무렵 육남매를 모아 놓고 마음에 담아두신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죽고 없어도 형제자매간에 우애있게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성심회(誠心會)라는 계모임을 제안하시고 매년 두번 모이게 하신 아버지! 그 높으신 뜻을 잊지 않고 실천하겠습니다.
1923년생이신 나의 어머니! 항상 자신을 낮은 자세에 두고 홀시어머니와 남편을 모시고
큰 소리가 대문밖에 나가지 않게 한평생 숨죽이고 조심스럽게 사신 어머니.
1963년 계묘년 보리흉년에 배고픔의 고통을 겪으시면서 "자식입에 곡기 들어가는 것 보면 나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씀은 우리 집안에 전설이 되었습니다.
산후조리 해 주시러 왜관에 오셨다가 엄동설한에 방풍이 제대로 안된 허술한 신혼집에서 오한으로 고생하시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떠나시는 모습을 지금도 가슴에 묻어두고 꺼내어 되새김질 해봅니다.
아흔둘에 내일 아침상을 손수 준비해 놓으시고 그 밥상을 드시기 전에 말문을 닫으시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삶이 그러하셨듯 마지막 모습도 깔끔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소원으로 "고통없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게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리는 되셨지만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얼마전 막내가 손자를 얻어 슬하에 쉰아홉명의 후손이 아버님 어머님의 가르침을 모두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다시 뵙는 그날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약속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아버지께서 지병이신 천식에도 평생 좋아하셨지만 두고가신 담뱃대를 보면서 시 한 수 드립니다.
아부지담뱃대
니코틴
더덕더덕
꼬깃꼬깃
못 생긴 투박함에
천년침묵이거나
다층으로 쌓인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
시집보낸 딸자식 허기진 모습,
속 타 들어가는 검은색
깊은 속 몰라주는 어께 좁은 동기간同氣間,
한숨짓던 남색
창씨개명 호통치다,
피범벅 된 검푸른색
열병 앓던 자식 업고 십리 길,
살려낸 안도의 초록색
장날 소판 돈 소매치기,
먼 산만 바라보던 눈가 이슬의 물보라색
먼저 가슴에 묻은 자식,
통한의 주황색
자식 놈 합격소식,
팬티바람으로 달려가던 불그레한 색
아부지요
담뱃대 두고갔다 섭섭해 마소
일곱 색깔 비단 보자기에
고이 모시겠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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