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를 그만두고 의원을 운영하는 원장으로 지낸 지 세 달이 다 되어 간다.
교수로 20년 가까이 살아서일까, 나는 똑같은 손수민이지만 교수 손수민과 원장 손수민의 간극이 아직은 낯설다.
우선 집에서 핸드폰을 신경 쓰지 않는 게 가장 큰 변화이다. 재활의학과 환자는 응급이 많지 않지만 문제가 생기면 크게 생기는 경우가 많고 이미 장애를 가진 환자는 그 응급으로 또 다른 장애를 더하기가 쉬워 퇴근하고서도, 샤워를 하거나 잠자리에 들면서도 늘 핸드폰을 곁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응급환자 연락을 받을 일이 없으니 자연스레 핸드폰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밥을 먹다가 핸드폰이 옆에 없어 옛날 습관으로 깜짝 놀랐다가 아니지, 하고 다시 밥을 먹기도 한다.
또 다른 변화는 진료할 때 마음껏 환자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대학병원에서는 시간에 쫒겨서 늘 누가 엉덩이를 걷어차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개원하고서는 환자가 많지 않아 1명 진료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있었다. 재활의학이라는 게 걷는 것만, 말하는 것만, 인지만 신경 쓴다면 반쪽짜리 재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안 아픈 다른 형제와는 어떤지, 장애가 남을 것 같은 경우 직업은 어느 쪽으로 하고 그걸 위해 앞으로 뭘 신경 써야 할지, 또 때로는 부모님이 지금 너무 힘든 상황은 아닌지 혹시 돈이 없어서 치료를 중단하려는 건 아닌지...환자가 소아이다 보니 부모님도 젊은 경우가 많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직 자리 잡기 전일 때도 많다. 또 아이 때문에 부모님이 많이 우울하거나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아이들의 치료는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사실 소아재활은 가족 재활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의 상처가 곪아 터져서 뒤늦게 들여다보면 놓치고 있는 가족이나 학교에서의 문제가 원인일 때가 있다. 이럴 땐 내가 더 신경 썼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나 혼자 환자에게 미안하다. 이렇게 챙겨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대학병원에서는 진료시간이 짧아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개원 후에 보호자분이 와서 하는 얘기가 대학병원 교수님이었을 땐 왠지 속 얘기를 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원장님 얼굴도 훨씬 여유 있어 보여 진료 보기가 편하다는 거였다.
이제는 교수가 아니어서 할 수 없는 일들도 분명 있겠지만 원장이라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내 환자인 준우를 직원으로 채용한 거다, 준우는 인지는 정상인 편마비 뇌성마비 환자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정규직이 안되길래 내가 채용했다. 준우가 우리 병원에 일하고 나서 많은 보호자들이 준우를 보고 희망을 가지는 것 같았다. 진료실에서 '너도 공부 열심히 해서 준우형처럼 손수민선생님 병원에 취직해'라고 아이에게 다짐 받는 보호자도 있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내 병원에서는, 내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평안하기를 바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 공간의 색깔을 그릴 수 있어서 개원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 환자들을 만날 생각으로 두근거리며 출근한다.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 손수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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