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전쟁 무기였던 백파이프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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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몇 있는데, 백파이프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전통악기인 이 백파이프가 전쟁 무기로 분류된 적이 있었으니 컬로든 전투(Battle of Culloden)에서였다. 플러드(Flood)가 쓴 '백파이프의 역사'에 의하면, 이 전투에서 패한 반란군의 백파이프 연주자였던 제임스 리드(James Reid)가 대반역죄로 처형됐는데, 황당한 것은 무기가 바로 백파이프였다는 것이다. 당시 요크 법원은 하이랜드 연대(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역에서만 병사를 모집할 목적으로 설립된 연대)는 백파이프 연주자 없이는 출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백파이프를 법률상 전쟁 무기라고 본 것이다.

컬로든 전투는 1746년에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근처 컬로든 습지에서 있었던 자코바이트 군대와 영국 정부군과의 싸움이다. 자코바이트는 잉글랜드 의회에 의해 축출된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에드워드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모두에서 왕으로 세우기 위해 프랑스의 지원으로 반란을 일으킨 정치 세력들이다.

이 당시 영국의 왕은 조지 2세였는데, 그는 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는 바람에 하노버 선제후국(과거 독일 북부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의 군주로서 영국의 왕위를 계승했던 조지 1세의 아들이다. 당시 국교도와 청교도가 다수였던 영국은 명예혁명 후 정치체제가 의원내각제로 바뀌었으나, 가톨릭 신자가 다수였던 스코틀랜드의 많은 귀족 가문은 왕정을 지지해 봉기했다. 이런 가문 중의 하나가 오길비 가문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중심으로 오길비 연대(Ogilvy's regiment)를 창설해 정부군과 싸웠다. 제임스 리드는 이 오길비 연대의 백파이프 연주자였다. 에딘버러에서 발행되었던 신문인 칼레도니아 머큐리의 기사에 보면, 1746년 11월 6일에 제임스 리드가 요크에서 대반역죄로 처형되었으며, 그는 앵거스의 샤이어 출신으로 오길비 연대의 이등병이었다고 되어 있다. 한때 자코바이트 군대는 스코틀랜드 전역을 점령하기도 했으나 조지 2세의 3남인 컴벌랜드 공작이 지휘했던 영국 정부군에 의해 컬로든에서 궤멸당했다.

반스(Barnes)에 의하면 컬로든 전투 이후, 하이랜드 연대는 영국 정부군에 통합됐으며, 소속된 백파이프 연주자가 북미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에까지 파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 전투에서 백파이프 연주자들은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었으며, 1760년에 있었던 실러리(Sillery) 전투에서 적절한 순간에 백파이프를 연주해 전투의 흐름을 바꾸도록 도움을 줬고, 다음 해 퀘벡에서는 프랑스 군대의 공격으로 군대가 흩어지자 백파이프 연주로 군대를 모아 전열을 가다듬도록 했다. 또 하이랜드 연대에서는 특정 시간과 임무에 따라 백파이프를 적절히 불었다고 한다. 아침의 기상나팔 격으로는 "어이, 쟈니 코프, 아직도 안 일어났냐?(Hey, Johnnie Cope, Are Ye Waking Yet?)"를,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는 "브로즈 앤드 버터(Brose and Butter)"를 일과를 종료하고 취침할 때는 "잠자오, 그대여, 잠자오(Sleep, Dearie, Sleep)"를 연주했다.

작년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서 백파이프로 연주된 노래가 이 "잠자오, 그대여, 잠자오"다. 엘리자베스 2세는 상당히 길었던 일과를 마감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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