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친구들과 얘기하다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 산딸기를 따 먹어 본 적이 있는지 물으니 산딸기 자체를 본 적이 없다 하고,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른다고 했다. 자기는 어릴 때 날마다 산 나들이 다니고, 친구들과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싸움시키며 놀았는데, 친구들은 어릴 때 학교 마치면 부모님 퇴근하실 때까지 이 학원 저 학원 다녔다고 해서 신기했다고.
◆내 아이만 보이던 재롱잔치, 공동육아 후 모두가 보였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 한 동네 살던 친구와 결혼했다. 남편과 제가 같이 어울려 논 기억은 없지만 '놀이터'는 같았다. 시골 놀이터란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는 곳이 아니라 산이고 강이고 골목이고 마당이다. 첫째가 어릴 때 제가 장난감을 사주려고 하면 남편은 "나는 어릴 때 고무신 한 짝만 있어도 하루 종일 놀았다"고 하니까 눈치가 보여 사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고무신 한 짝이랑만 논 것이 아니라, 고무신에 채울 강물과 모래, 피라미와 풀잎이 있었고 어울려 놀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대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연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행복한 유년을 선물해 주고 싶어 공동육아를 시작하게 됐고, 우리 아이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공동육아를 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점은, 제 아이만 보이던 것이 다른 아이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동육아를 시작하기 전 첫째가 다닌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가 열렸는데, 그땐 오로지 내 아이만 보였다. 실수할까 불안하고 잘 해내면 감격하면서 시선이 온통 내 아이에게만 쏠려 있었다. 하지만 공동육아에서 아이들이 공연할 때 다른 아이들도 다 보이고 누군가 실수하면 같이 웃고 격려하게 됐다. 그 아이들 이름을 다 알고 어떤 아이인지 다 알고 있어서였다.
아이들도 나를 '○○ 엄마'라 부르지 않고, 우리가 정해준 별명으로 불렀다. 그리고 내게 반말을 썼다.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대등한 관계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동육아에서 아이들은 형, 누나라는 호칭 외에는 선생님이고 다른 부모고 다 별명과 함께 반말을 썼는데,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만난 담임 선생님께는 바로 존댓말을 썼다. 그때 인간에 대한 예의는 존댓말을 하느냐 반말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존중받으며 편안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레 남을 존중할 줄 알게 된다.
◆공동체 속에서 겪는 '부대낌', 그리고 '성장'
물론, 공동육아 아이들이라고 해서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동육아라는 울타리 속에서 아이들은 숱한 부대낌을 겪는다. 다른 아이와 싸우기도 하고 공동체 속에서 함께 지켜야 하는 규칙과도 갈등하고 또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고 좌절하면서 자기 자신과도 부대낀다. 부모 역시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라는 틀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처음 부모가 돼 보니까 그게 쉽지 않았다. 아프게 깎여 나가며 시야와 품을 넓히는 것이다. 아이도 부모도 맷집을 길러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육아는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 보내는 것을 막고 있다. 하루의 시간이 한정돼 있는데 실컷 놀게 하면서 학원도 보내는 것이 양립할 수 없다. '공부하는 뇌, 성장하는 마음'이란 책을 쓴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소속 의사에게 "공부 잘하는 아이,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고 묻자 "옆집 엄마를 멀리하세요. 특히 맘카페 수다쟁이 엄마요. 그래야 아이가 공부를 잘합니다"고 답했다 한다. 그런 엄마들은 자꾸 불안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상태를 보기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해 더 나은 아이가 되도록 하는 데 몰두하게 만든다.
그런데 공동육아에서는 반대로 선행학습 하지 못하도록 서로 발목 잡는다. 불안을 덜기 위해서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렇게 자란 아이 중에서도 특히 아이보다 자기 일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됐을 때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자기 할 일은 어릴 때부터 알아서 해내는 훈련이 됐을 테니까.
그곳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육아 지침이 있다면,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자라지 않고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부모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뒤에서 바라보면서 말이다. 결국 부모가 아이의 일에 하나하나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잘 살면 아이도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살아보니 유년의 기억이 평생을 따라다니지 않던가. 정신과 상담에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고, 뉴스에 나올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의 경우 대부분 불행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주변을 봐도 듬뿍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어린 시절 보낸 사람은 삶의 고비마다 덜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미래를 위해'라는 유통기한 없는 불안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현재의 행복을 돌려줘야 한다. 모든 부모의 최대 바람은 험한 세상에서도 내 아이가 꿋꿋하게 자립해 나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배꽃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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