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검은 모나리자

박찬순 지음/ ㈜도서출판 강

2020년 3월, 우리는 마스크 하나라도 더 구입하기 위해 약국마다 하염없이 긴 줄에 서 있어야 했다. 사진은 당시 대구 달서구의 한 약국 앞에 마스크를 구입하려고 늘어선 시민들의 행렬. 매일신문 DB
2020년 3월, 우리는 마스크 하나라도 더 구입하기 위해 약국마다 하염없이 긴 줄에 서 있어야 했다. 사진은 당시 대구 달서구의 한 약국 앞에 마스크를 구입하려고 늘어선 시민들의 행렬. 매일신문 DB

서울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한 달만에 전국적으로 7천 명을 훌쩍 넘어섰고 그중 사분의 삼이 대구 신천지교회 신자로 집계된 날이었다. 서울에서는 대놓고 '대구 봉쇄'란 말까지 나왔지만 시민들은 조용히 집에 머물렀고 단지 마스크를 살 때만 밖으로 나와 줄을 섰다.(296쪽)

먼 과거의 일인 듯 이제는 아련한 듯한 기억이지만, 불과 3년 전인 2020년의 모습이다. 이 책의 단편 중 하나인 '황금소로'는 이 시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스크가 절대 부족해 마스크 5부제에 시행되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주인공 소희도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이마트 내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하염없이 늘어선 긴 줄에 서 있었다.

그 줄 사이에서 소희는 오래 전 연인이었던 Y를 보게 되고 그와 함께 다녔던 추억의 장소들(청라언덕, 향촌동 수제골목, 동성로 등)을 배회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마스크 행렬에서 마주친 그의 모습에 소희는 실망한다. '폭삭 삭은 얼굴과 구부정한 어깨'라고 표현하며 차라리 보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까지 담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가 살아온 또다른 시간이 담긴 거울인 것을. '어려서는 피난 시절의 친구였고, 자라서는 유쾌한 연인이었던 한 평범한 인간. 때론 실수도 하고 그것으로 해서 고통도 받았을, 하지만 그 시절의 순수함에는 티끌만큼의 흠결도 없었던'이라는 말로 Y와 Y로 인해 받았던 자신의 상처와 화해한다.

초유의 팬데믹을 겪는 지난 3년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재난은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갔지만 역설적이게도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었음을 소설 주인공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인 '검은 모나리자'에서는 대필 작가 '희진'이 어둠에서 빛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렸다. 글을 가르치던 탈북 청소년 글짓기센터가 팬더믹으로 문을 닫는다.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로 문학 기행 취재를 떠나지만, 리옹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발이 묶인다. 자전거 배달 도중 사고를 당한 소년 '아둠'을 만나며 일이 풀린다. 아프리카 출신으로, 제 일을 능숙히 해내는 소년이다. 타국에서 온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함께 배달 일을 한다. 어느날 아둠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가 고향을 떠올리며 그린 '검은 모나리자' 그림이 희진에게 나아갈 힘이 된다.

이번 소설집에는 멀게는 2016년 구의역에서 있었던 스크린도어 정비공의 죽음에서부터 가깝게는 코로나로 인한 실직과 사망, 혹은 159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최근의 10·29참사에 이르기까지 실제의 비극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이 실려 있다.

지은이는 MBC PD, MBC, SBS 외화 번역 작가로 활동한 바 있으며,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가리봉 양꼬치'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여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339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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