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중도층은 안 보이는가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먼 훗날 역사는 이번 여름을 어떻게 평가할까. 때 아닌 이념 논쟁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문제가 한국 정치권의 이슈로 떠올랐다. 육사에서 홍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불거지면서 불똥은 해군의 잠수함 '홍범도함' 명칭 변경 논란으로 튀었다. 대전시장은 국립대전현충원 앞에 있는 '홍범도장군로' 폐지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공조가 파국으로 끝나면서 한미일 공조 복원은 시급한 과제였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복원을 시도한 이유다. 그런데 갑자기 홍 장군의 이념 논란이 끼어들었다. 지난달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했다. "이제는 경제다"라며 민생 행보를 강조한 여당과는 엇갈리는 기조였다. 내년 총선 공천을 받아야 하는 여당 의원들의 위축된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마디 이론도 없었다.

타이밍을 못 잡는 정치를 하는 데는 야당도 도가 튼 듯하다. 여러 비리 의혹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단식을 하고 있다. 정치인의 단식투쟁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승부수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단식을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방탄 단식'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단식에 대한 조롱과 야유를 쏟아냈다. 서로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겠다"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지만 작금의 상황이 출범 2년도 안 된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님은 확실하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야당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여야의 합작품이며, 민심을 외면한 극단의 정치가 주범이다. 지금은 단식을 할 때가 아니다.

수도권은 공룡처럼 비대해졌고 지방은 풍선에 바람 빠지듯 쪼그라들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은 세계 1위이다. 추석을 앞두고 물가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서민과 중소기업의 허리가 휘고 있다. 흉기 난동이 벌어져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고, 교사들은 민원과 갑질에 계속 목숨을 끊고 있다. 풀어야 할 사회·경제적 숙제는 쌓여 있지만 정치권은 구조적 문제점들을 방치하고 있다.

여야는 서로에게 저주의 언어를 퍼붓고 있다. 갈수록 정치 언어가 거칠어지고 있다. 서로에 대한 공격에만 집중하고 있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은 시도하지 않고 정쟁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해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일반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하다. 여야가 지지층만 바라보며 표 단속에만 나서면서 소외감도 느낀다.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을 앞두고 대화와 타협, 상생은 갈수록 실종될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여야는 사생결단으로 싸울 것이다. 여당이 제1당을 달성하지 못하면 레임덕이 올 수 있고, 야당이 과반을 못 지킬 경우 다음 대선을 기약하기 어렵다. 여야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중심으로 내년 총선을 치르려는 듯하다.

일반 국민의 비판은 안중에도 없고 중도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하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이 역대 최대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정치 혐오의 시대다. 대통령은 야당을 협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야당 대표는 언제 끝날지 무엇 때문에 하는지도 모를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 여야가 먹고사는 문제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싸움은 언제나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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