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따르면 경부선 KTX가 개통된 것은 2004년 4월 1일이다. 나는 그 다음주 화요일인 4월 6일 아침 7시쯤 처음으로 KTX를 타고 서울로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갔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여 지나 '우리 열차 곧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을 때, 객차 안에 많은 경상도 사람들이 '하아따라!'하며 탄성을 지르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4월 1일 이전의 나는 새벽 4시쯤 동대구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다는 것인데 이제는 도무지 그 시간에 발을 동동거리며 플랫폼에 서 있었을 내 모습이 기억나지가 않는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새벽 4시는 언제나 어두웠을 것이고, 그 기차를 타기 위해서라면 최소 그보다 한 시간 반 전에는 일어나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는 잠자리를 꽤 가리는 편이라 무궁화호로 4시간이나 걸리던 서울까지의 여정동안 말똥말똥 눈을 뜨고 한반도에 여명이 밝아오는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참으로 고달픈 여정이었지만 첫 기차는 늘 만석이었고 그 꿉꿉한 열기로 가득 찬 객차 안에서 세상 사람들의 치열하고 피곤한 이동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오전 수업이 끝나면 이미 체력이 바닥나 버린 나는 지옥과도 같은 그 등굣길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던 서울 녀석들은 일과를 마치고 학교 근처 맥줏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순간에도 생생한 낯빛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10월이면 대학 수시전형이 시작된다. 실기시험이나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지방의 어린 학생들이 아침 첫 기차를 탈 것이다. 그마저도 KTX를 이용할 수 없는 학생들은 고사 하루 전 대학교 근처 숙박업소에 방을 잡고 낯선 서울의 밤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새울 것이다. 대입 예체능 실기의 경우 통상 3~6개 학교를 응시하는데 수험생의 부모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 이동 비용이 적게는 50만원에서 많으면 3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어머니는 수험생 딸아이를 데리고 호텔이 아닌 모텔에 방을 잡은 것이 못내 민망하고 미안했는데 눈치가 빤하고 착한 딸아이가 '엄마 미안해. 그냥 음악하지 말고 공부나 할 걸 그랬어'라고 말하는 바람에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 놓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단다.
대학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실기나 면접을 꼭 아침에 보아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후 한두시쯤 일정을 잡아도 행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시험을 치러야 하는 아이들이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도 먹지 못하고 상경하는 일도 거의 사라질 것이며 빠듯한 형편에 숙박비를 걱정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 서너 시간의 늦춤이 대한민국의 반 정도 되는 숫자의 수험생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과 부담을 덜어줄지 조금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옛날 옛적에 문경새재를 맨몸으로 넘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갔다는 사실, 잘 알고 있다. 그게 뭐 좋은 일이라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짓을 반복한단 말인가. 내가 해 보아 힘들고 괴롭고 남는 것 없는 짓은 후손에게 남기지 않고 과감히 고치는 것이 어른과 선생의 옳은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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