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매혹하는 미술관

송정희 지음/ 아트북스 펴냄

선연한 붉은빛으로 그려낸 조지아 오키프의 양귀비가 표지를 장식했다. 들여다볼수록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 작품의 너머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 책을 쓴 송정희 작가는 10년간 영자 신문 '제주위클리'를 발행해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해오다, 뒤늦게 미술에 매혹돼 제주에 갤러리를 연 갤러리스트다.

미술계에 뛰어든 뒤, 어두운 주변을 더듬으며 한 발씩 내딛는 어렵고도 낯선 여정이 이어졌다. 그 때마다 그를 위로한 것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그에게 많은 위로를 건넸던 여성 미술가 12명의 얘기를 담았다.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 판위량, 마리기유민 브누아, 프리다 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 책에서 다루는 이 12명의 미술가들은 가족과 얽힌 트리우마, 강렬한 사랑이 불러온 깊은 상처, 비극적인 사고, 사회적 장벽 등을 마주해야 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예술로써 말했고,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겼다. 굴곡진 인생사를 배제하더라도 생명력 넘치고 혁신적인 이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우리의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특히 이 책은 조지아 오키프의 '검은 붓꽃 Ⅲ'를 비롯해 천경자의 '생태', '황금의 비' 등 회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사진 등 80여 점의 작품을 생생한 컬러 도판으로 보여준다.

또한 12명의 작가 중 10명의 활동 시기가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에 걸쳐있는데, 실험적인 예술사조가 속속 등장하는 한편 전쟁으로 향해가는 유럽의 정세가 심리를 잠식했던 당시, 불안 속에서 여성 미술가들이 견지했던 주제의식과 그에 대한 평가도 살펴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가 술술 읽히는, 쉽고 재밌는 책이다. 미술에 매혹돼 재미와 기쁨을 느꼈던 과정을 독자들도 알길 바라는 마음이 내비친다.

"나는 독자들이 작품에 숨어 있는 씨앗을 발견하고 햇빛을 비춰주고 물을 주며 한 그루의 나무처럼 키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이 미술에 대한 길눈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31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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