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오펜하이머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해요. 왜 하나의 도그마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죠?" 영화 '오펜하이머' 초반에 나오는 대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했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의 바탕은 퓰리처상을 받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그의 굴곡진 인생을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대가는 가혹했다.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았다. 오펜하이머(애칭 오피)의 삶도 그렇다. 그가 개발한 원자폭탄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돼 2차 대전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면서 고난을 겪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국가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오피는 소련의 스파이로 내몰렸다. 그는 한때 공산주의 사상에 동조했다. 아내와 동생, 내연녀, 일부 친구들이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간첩 혐의는 억울했다. 그는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에 휩쓸렸다. 1954년 그는 보안 청문회장에 출석했다. 자신의 삶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천재 과학자가 시대의 광기에 힘없이 무너진 것이다. 다행히 지난해 미국 정부는 그의 간첩 혐의를 68년 만에 벗겨 줬다.

시와 동양철학을 좋아했던 오피. 그는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이 세상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오피의 삶은 천재 과학자의 비극이다. 국가는 '영웅'으로 추앙하던 과학자를 '반역자'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이 오피에게 "이런 대접을 받느니, 다른 나라로 가라"고 권했다. 오피는 "나는 조국을 사랑한다"며 거절했다.

과학은 정치적 중립이 불가능한가? 과학은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란을 위시해 정치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았다. 과학자 오피의 삶이 그랬다. 광우병, 사드(THAAD) 전자파, 코로나19,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 같은 전공의 과학자들이 상반된 주장을 하니,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과학적 사실과 정치적 주장이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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