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그들은 왜 진상 학부모가 됐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가운데, 12일 오후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가 대전 유성구에서 운영 중인 가게 앞에 학부모를 비판하는 내용의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가운데, 12일 오후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가 대전 유성구에서 운영 중인 가게 앞에 학부모를 비판하는 내용의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김봄이 디지털국 기자
김봄이 디지털국 기자

[청라언덕] 그들은 왜 진상 학부모가 됐나

김봄이 디지털뉴스국 차장

"아이가 상처받으니까 틀린 문제에 빗금을 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알려준 적도 없는데 학부모가 개인번호를 알아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했다." "친구를 때리는 아이를 말렸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

최근 교권 침해에 대한 논란이 커지며 교사들이 밝힌 사례들이다.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사례들의 공통점은 침해의 주체가 대부분 '학부모'라는 것이다.

교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들에도 하나같이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일반적인 훈육 상황에 대해서도 악성 민원을 제기하거나 아동학대로 고소하기도 했다. 마치 '일진'처럼 교사를 집요하게 괴롭히기도 했고, 심지어는 교사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겠다며 장례식장을 찾아가 유족들과 실랑이를 벌인 '괴물 학부모'도 있었다.

사실 진상 학부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60년대 공교육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들은 존재했다. 아이의 교육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으며 학교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의 행동은 일명 '치맛바람'이라 불렸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요즘 학부모' 중 진상 학부모가 과거보다 많아졌을 뿐 아니라, '소비자 의식' 때문에 교권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한다.

요즘 학부모들은 '학교 서비스는 내가 돈(세금)을 내고 이용하는 것이고, 교사들은 서비스 종사자다'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교사에게 전화나 카톡 등을 통해 연락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면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교사에게 연락하는 것은 소통의 방법 중 하나이며, 민원 또한 적절한 것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학교의 기능에 대한 학부모와 교사 간의 동상이몽이 더해지며 '진상 학부모'가 생겨난다. 교사들은 교육이라는 학교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지만, 학부모는 보육과 상담, 진로 컨설팅 등 더 많은 기능을 요구한다.

요즘 학부모들은 교육을 학교가 아닌 사교육으로 해결한다. 공교육에서는 보육과 사회성 증대 등을 기대한다. 보육을 기대하는 학부모가 자칫 선을 넘게 되면 '아침을 안 먹었으니 점심 전에 먹을 걸 챙겨 주세요' '아이 약을 O시에 먹여 주세요' 같은 황당한 요구를 하는 진상 학부모가 된다.

이번 사태에서 가해 학부모들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닌 끔찍한 수준의 교권 침해를 저질렀음이 드러나고 있다. 여론의 질타가 이들에게 쏟아지고 있고, 일각에서는 이들의 사례를 일반화시켜 학부모 집단 전체를 악마화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가해 학부모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개인이나 학부모 집단이 아닌 교육 시스템을 질타해야 한다.

다행히도 교권보호법을 국회에서 빠르게 통과시키려 하고, 교육 당국도 학부모 민원 대응 시스템 개선,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방지책 등을 마련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려면 비대해진 학교의 보육 기능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만 교사와 학부모 간의 동상이몽을 해소할 수 있다. 지금이 학교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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