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고령은 예로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고장으로 명성이 높다. 고령을 '산고수령'으로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고령의 자랑이 높은 산과 맑은 물만은 아니다. 고령의 자랑은 대가야의 빛나는 역사이다. 고령은 대가야의 도읍지이다. 고령은 북으로 산이 높다. 외부 침입을 막는 데 유리한 지형이다. 낙동강과 회천강은 고령의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었다. 고령은 나라가 세워지고 문화가 발원할 여건이 충분했다.
대가야는 562년 진흥왕 23년, 신라에 병합된다. 거의 520년을 고령이 대가야의 도읍지로 존재했다. 5년이 아니다. 50년도 아니다. 500년이다. 대가야인의 수많은 희로애락이 고령 땅에서 명멸했다. 그러나 우리는 고령의 대가야 이야기를 거의 모른다. 어디 대가야만 그런가. 김해, 창녕, 함안, 합천 일대에서 명멸한 크고 작은 가야의 이야기를 우리는 모른다.
그런데 그럴 이유가 있다. 역사의 무대에서 가야연맹이 사라진 까닭이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정 때문에 그렇다. 백제를 응징한다는 목적으로 고구려 광개토왕이 400년에 남정을 결행한다. 남정의 명분은 신라 구하기였다. 이 사건 때문에 금관가야가 크게 약화된다. 맹주의 자리를 대가야가 이어받는다. 가야연맹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그 존재 방식이 다르다. 가야연맹은 삼국 그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자율적 교류 네트워크였다. 가야연맹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철과 자기를 해외에 수출한 무역국이었다. 고령의 대가야도 제철 기술이 훌륭했다.
대가야도 그렇지만 가야연맹은 문헌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고령 고분군은 문헌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고분군은 단지 고대인의 무덤이 아니다. 고령 고분군은 대가야의 역사는 물론 가야인의 삶에 접근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며 타임캡슐이다. 또한 고령 고분군은 대가야를 정밀하게 해석하는 텍스트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포함하여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의 언론 보도 요지는 이렇다. 유네스코의 전문가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우리나라가 신청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 '가야 고분군'에 대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는 게 언론 보도의 요지이다. 이렇게 '가야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거의 확정적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기준은 까다롭다. "살아 있거나 또는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 혹은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게 유네스코의 등재 신청 기준이다. 고령 고분군을 포함하여 가야 고분군이 독보적 또는 특출한 세계문화유산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고령에는 전국 유일의 대가야사 전문 박물관이 있다. 이름이 대가야박물관이다. 가을이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지산동 고분군을 걸어 보시기를 바란다. 고분과 고분 사이의 오솔길을 걷다 보면 생과 사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게다가 고분군의 경관은 적요한 아름다움의 극치여서 걷는 자도 어느새 경관 속에서 풍경이 된다. 운이 좋아 가야금 소리를 듣는다면 그날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사라지고 지워진 역사를 애틋한 마음으로 대하는 게 후손의 도리이다.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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