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우보다 비싼 황금사과"… 사과값 작년의 3배, 추석 앞 과일 대란 어쩌나

경북서 올해 최상품 사과 최고가 1박 20㎏ 당 30만원 기록
전년대비 적게 50%, 흠과는 200% 폭등해
사과값 인상에 소비자와 전통시장 등 영세상인 피해 클 듯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서 중도매인과 경매사들이 9일 입고된 사과에 대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서 중도매인과 경매사들이 9일 입고된 사과에 대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한우보다 비싼 사과'가 유통되면서 추석 소비자 차례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각종 자연재해와 병충해로 사과값이 지난해의 3배까지 뛴 탓이다.

이번 주부터는 사과 값이 더욱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전국 대표 사과 주산지인 경북에서 상인들은 재고가 쌓여 손해가 막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청송사과 20㎏ 25만원…물건 떼가도 팔 수 있겠나"

"17만원 낙찰이요."

지난 4일 청송사과유통센터 청송군농산물공판장에서 올해 첫 청송사과 경매가 열렸다. 이곳은 전국 사과값 가이드라인을 잡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과 물가 지표의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날 경매 초반부터 지난해 최고가를 넘기는 홍로(20㎏) 낙찰가가 나왔다. 머지않아 경매를 거듭할수록 최고가 기록이 깨지면서 최고 25만원까지 나왔다.

청송사과유통센터에 따르면 이날 총 76톤(t)의 사과가 경매에 부쳐졌다. 홍로(20㎏) 평균 낙찰가는 11만7천원으로, 지난해 평균 낙찰가 5만원의 2배 수준이다.

사과값이 이처럼 폭등한 것은 올해 초부터 잊을 만하면 찾아온 냉해와 우박, 집중호우, 태풍 등 이상 기후에 낙과와 흠과가 속출한 영향이다. 올해 사과의 산지 출하량은 전년 대비 60%로 급감했다.

산지 사과를 경매해 도·소매상에 유통하는 중매인들은 20㎏ 당 15만~20만원 사이의 사과를 두고 가장 치열하게 경쟁했다. 예년보다는 비싸지만 치솟은 물가를 감안하면 적정 가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매물이 좋다 싶으면 너무 비싸 눈치를 보다가 놓치기 일쑤였다.

중매인 A씨는 "영세 중매인들은 만원이라도 싼 걸 낙찰받으려고 눈치싸움을 하는데, 자금력이 되는 쪽에서 다 받아 가니 속만 태웠다"며 "비싸더라도 납품처가 있어서 안 살 수는 없고 울며 겨자 먹기 심정"이라고 말했다.

'좋은 사과' 쟁탈전에 뛰어든 중매인들은 혹여나 손해만 볼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품귀' 수준인 양질의 사과 위주로 떼다 팔려니 중매인 간 치열한 입찰 경쟁 탓에 지출 부담이 너무 크고, 기껏 사더라도 비싼 가격에 소비자가 외면할 것만 같아 불안한 탓이다.

중매인 B씨는 "청송사과 낙찰을 부탁받고 왔다. 좋은 사과를 고르긴 했지만 대부분 20㎏에 20만원을 웃돌아 모두 팔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사과 농가끼리는 '빈익빈 부익부'로 희비가 엇갈렸다.

올해 운 좋게 자연재해 영향을 덜 받은 상등품 수확 농가들은 몇 년 만에 큰 수익을 낼 수 있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와 달리 병해와 낙과를 앓고서 겨우 경매에 참여한 농가는 "저 많은 사과가 우리 과수원 것이어야 했다"며 경매 내내 울상이었다.

청송 한 농민은 "사과 가격이 좋아 한알이라도 더 내려고 고이 모시고 이곳까지 왔다"며 "흠과나 낙과도 상태가 좋으면 다 사가므로 올해는 우리집에서 남겨 먹을 것도 귀하다"고 했다.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서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하루 2만4천 상자, 480톤(t) 가량의 사과가 입고돼 경매에 부쳐진 뒤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다. 김영진 기자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서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하루 2만4천 상자, 480톤(t) 가량의 사과가 입고돼 경매에 부쳐진 뒤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다. 김영진 기자

◆"올 추석 선물, 사과 대신 한우가 쌀 지경"

기록적인 사과 값 폭등 탓에 올 추석 선물의 입지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동시농산물도매시장 등에 따르면 18일 기준 사과 대과(최상품)의 낙찰가는 한 상자(20㎏) 당 최고 34만9천원까지 나왔다. 연일 최고가를 경신한 데다 전년 동월 최고가 상자당 25만원보다 9만9천원 이상 오른 값이다.

전년대비 상승률을 보면 대과가 50%가량 올랐고, 중소과는 150%, 흠과는 200%가량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기존 3만, 4만원 하던 흠과의 상자당 경매가도 올해 최고 14만원까지 오른 바 있다.

실제 지난달부터 현재까지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 입고된 사과 물량은 전년보다 5만 상자, 1천 톤(t) 이상 줄었다. 안동지역 2개 공판장에서 유통되는 사과는 전국 유통 물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안동농협 공판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올해 사과는 한우보다 비쌀 지경이다. 나라도 같은 값이면 사과 대신 한우를 사겠다"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당장 소비자에게 사과를 팔아야 할 전통시장 등 영세 상인들도 부담이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졌다.

안동농협 경매에 참여한 한 중도매상인은 "사과가 아무리 저장성이 좋아도 어쨌든 생물이다. 소상인들이 많은 재고를 보유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0상자를 구입하면 비싸도 1천400만원 미만에 구입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2천만원이 훌쩍 넘는다. 당장 좋은 사과를 팔겠다고 비싸게 대량 구매했다가 소비자가 외면해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재고를 떠안는다면 그것대로 또 손해라고 생각하는 상인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사과 값은 이번주 중 최대치를 찍을 전망이다. 본격적으로 추석 명절 선물을 살 때인 데다, 차례상에 올릴 과일을 장만하느라 대과 소비가 느는 시점이다.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 관계자는 "사과 값은 추석을 보름 앞두고 선물용으로 쓸 수 있는 최상품의 가격이 가장 높아진다"며 "이미 한 상자 30만원 최고가가 나왔으니 추석 전까지 최고 40만원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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