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목의 철학이야기] 가을의 철학, 봄의 철학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산에는 꽃 피네…/갈 봄 여름 없이…/산에는 꽃 지네…/갈 봄 여름 없이" 김소월의 '산유화'를 읽으면 겨울 빼고 쉴새 없이 꽃이 피고 진다. 김현승은 '가을'에서 "봄은/가까운 땅에서/숨결과 같이 일더니//가을은/머나먼 하늘에서/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고 했다. 산천초목을, 봄은 푸릇푸릇 세밀한 구상화로, 가을은 불긋불긋 간결한 추상화로 그려낸다. 구상화에는 현실을 긍정하는 따스함이, 추상화에는 현실을 부정하는 차가움이 깃든다.

꽃 피는 봄은 '발산적, 상승적, 연역적'이나, 낙엽 지는 가을은 '수렴적, 하강적, 귀납적'이다. 봄은 '오는 님'으로 곱상이라 여래(如來)인 듯, 가을은 '가는 님'으로 밉상이라 여거(如去)인 듯 느껴진다. 같은 지상 위의 에너지이나 한쪽은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일출과 에로스(eros, 生)의 힘을, 한쪽은 서쪽으로 가라앉는 일몰과 타나토스(thanatos, 死)의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랬다저랬다 한다. 같은 계절을 두고서도 관점이 다르다. 영국의 시인 제러드 맨리 홉킨스는 '봄과 가을'에서 "인간은 시들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고, 잘 알려진 CCM(현대기독교음악)에서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다. 동요 '가을밤'에서는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이라고 했으나,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산행'에서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더 붉어라"고 했다.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며 봄을 '찬란하지만 슬픈' 계절로 묘사했다. T.S. 엘리엇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라 하여 봄을 '아름답지만 잔인한' 계절로 보았다. 사실 존재의 현실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일단 둘로 갈라놓고 시작하는 쪽이 있다. 보통 유럽이 그렇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유럽의 철학 전개를 한 마디로 '플라톤의 이원론에 대한 각주(=해석)'의 역사라 보았다. 이 점에서 동양은 '합일, 일체'의 경향은 강하다고는 하나 실제 '음양, 천지, 남녀…'처럼 이분법적 시선을 영 버리지 않았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정신은 원천적으로 '이원적'이라 한 것에 동의한다.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길도 그렇다. 두 가지다. 하나는 긍정의 길(via positiva)이고 하나는 부정의 길(via negativa)이다. 긍정의 길은 말이 많으며 시끌벅적한 세속의 유(有)로 내려오는 방향이고, 부정의 길은 말수를 줄여 침묵과 무(無)로 올라가는 방향이다. 서구 기독교 신학에서 본다면, 전자는 구체적 이미지인 성상(聖像)을 통해 성스러운-무한의-초월적 실재에 다가서는 '긍정신학'을, 후자는 오히려 이런 것들을 없앰으로써 그곳에 다가선다는 '부정신학'을 내세운다.

힌두교에서 보면, 전자는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다"(neti! neti!)라며 분별을 넘어서는 쪽이고, 후자는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라며 개체와 전체를 하나로 보는 쪽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전자는 '없다!'라는 부정의 길로 간 중관철학에, 후자를 '있다!'라는 긍정의 길로 간 유식철학에 대비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피어나는' 기운을 '원형(元亨)-생장(生長)-춘하(春夏)-목화(木火)'에 짝짓고, '떨어지는' 기운을 '이정(利貞)-수장(收藏)-추동(秋冬)-금수(金水)'에 짝짓는다. 여기서 율곡 이이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사시(四時)의 순서로 말하면, 원(元)이 우두머리이나, 처음과 끝을 이루는 점에서는, 원은 정(貞)에서 시작하여 정에서 끝나므로 순환하여 끝이 없다." 순서는 임시적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춘추(春秋)라 하면서 하동(夏冬)이라 하지 않는 것"은 "여름의 더위는 봄의 따뜻함에 시작하였고, 겨울의 추위는 가을의 서늘함에 비롯한 것이다…그러니 봄은 여름을 포함하고, 가을은 겨울을 포함한다." 춘추라 하면 곧 '한 해'를 다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나이를 '춘추'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노나라 역사서 『춘추』에서는 일 년의 역사를 춘하추동으로 나눠 기록하였다.『춘추』가 '한해씩의 역사'이니 사람의 '낫살 먹는 역사'에 비길만하다.『초사』나『전국책』같은 데서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것을 '춘추고(春秋高)'라 한 것도 이에 근거한다. 요즘 '낫살 먹음'을 '연식(年食)이 오래 되었다' 하고 우습게도 '연식(年式)'이라고도 한다.

인생은 봄이면서도 가을이고, 가을이면서도 봄이다. 봄과 가을, 한 지역을 2번 지나가는 철새를 '나그네새'라 한다면 인간이야말로 항상 나그네다. 사람의 마음을 크게 하는 계절이 봄이고,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채근담』에서 말한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이라는 피카소의 말처럼, 봄가을은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방편이겠다.

기후변화로 봄과 가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봄날의 아련한 꿈[春夢]이니 가을날의 낙엽 지는 소리[秋聲]니 하는 말도 좀 빛바래 간다. "꽃을 보지 말고 꽃자리를 보라!"고 했다. 봄이나 가을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모든 생멸의 찰나를 즐기는 것이 좋겠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