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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38> 레스피기의 교향시, ‘로마의 분수’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트레비 분수. 서영처 교수 제공
트레비 분수. 서영처 교수 제공

물은 도시가 성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을 차지한다. 농업생산과 생활용수, 운하를 통한 유통 외에도 도시 미관을 수려하게 만드는 것이 물이다. 고대 로마는 테베레 강을 끼고 번창했다. 하지만 인구가 100만에 육박하는 도시에서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이 강만으로는 필요한 물을 충분하게 공급받을 수 없었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남쪽에 위치한다. 로마인들은 더위와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수로를 건설해 로마 인근의 수원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로마는 도시의 광장 곳곳에 분수를 세웠다. 분수는 아치를 통해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공공 인프라였다. 아치 위의 수로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불순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덮개로 덮었다. 이외에도 급수 탱크를 설치하는 등으로 물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로마의 목욕탕은 휴식 공간이자 회합의 장소로 공공 문화 시설이었다. 이곳에는 식당과 휴게실, 체육관이 갖춰져 있었고 신분의 차이 없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분수를 대리석 조각상으로 치장하고 목욕탕은 높은 천장과 화려한 기둥으로 장식해 로마의 수준 높은 예술과 문화를 과시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레스피기(Ottorino Respigi, 1879-1936)는 성악과 오페라가 중심인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관현악곡을 작곡하며 기악 운동을 일으킨 최초의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란한 관현악 기법과 인상주의적인 색채로 영원한 제국, 로마의 이름을 붙인 세 개의 교향시를 작곡했다. "로마의 분수(Fontane di Roma, 1917)", "로마의 소나무(Pini di Roma, 1924)", "로마의 축제(Feste Romane, 1929)"가 그것이다. 그의 교향시는 시적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주제를 자유롭게 변형해 나가는 표제 음악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4악장의 교향곡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 중에서 "로마의 분수"는 1, 새벽의 줄리아 계곡의 분수, 2, 아침의 트리톤 분수, 3, 한낮의 트레비 분수, 4, 황혼의 메디치 별장의 분수로 나누어진다. "로마의 분수"는 곳곳에 분수가 있는 풍요로운 도시 정경을 통해 화려했던 옛 이탈리아의 영광을 노래한다. 레스피기는 4개의 분수와 이 분수들이 가장 아름다운 때(새벽, 아침, 한낮, 황혼)를 골라 눈으로 보듯 시각적으로 음악을 완성한다. 레스피기는 물의 흐름과 솟구쳐 나오는 분수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동원해 경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리듬으로 그려낸다.

몇 년 전 로마 여행길, 세 개의 길이 만나는 작은 광장에 있는 트레비 분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라 분수를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대구는 홍수와 태풍 같은 천재지변에 비교적 안전하지만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전국 최고의 뜨거운 도시다. 한때 나무 심기 사업으로 대구의 여름 기온을 낮추었다면 지금은 도심 곳곳에 분수를 설치해 도시 미관을 정비하고 무더위도 이겨나가는 안목 높은 미래 정책을 펼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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