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학교 동창 4명이 만든 '무명장학회'…"선생님 뜻 받들다 보니 25년이네요"

노진우·박경환·손기복·추중엽 씨…덕원고 퇴직 윤장근 교사 제자들
'의미 있는 일 해보자' 의기투합
매달 5만원씩 모아 은사가 정한 기준에 맞는 한 학생에게 지원
"5만원 행복 좋은 스승 만난 징표"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 네 명이 모였다. 왼쪽부터 손기복 영남이공대 교수, 노진우 영주 참사랑외과의원 원장, 윤장근 선생님, 박경환 지름길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추중엽 서재외과의원 원장. 이화섭 기자.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 네 명이 모였다. 왼쪽부터 손기복 영남이공대 교수, 노진우 영주 참사랑외과의원 원장, 윤장근 선생님, 박경환 지름길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추중엽 서재외과의원 원장. 이화섭 기자.

대구에 '이상한 장학회'가 있다는 제보가 매일신문으로 들어왔다. 중학교 동창 4명이 매달 5만원씩 모은 돈을 은사가 정한 기준에 맞는 한 학생에게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이 장학회는 남들이 보기엔 실체가 무엇인지 아리송할 수밖에 없다. 이름도, 정관도 없이 25년간 지속되는 이 장학회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이 장학회의 회원들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남을 청했다. 이들은 흔쾌히 청을 받아들였고 만남의 자리에서 장학회 결성부터 운영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8년 덕원고를 명예퇴직한 국어 교사 윤장근(76) 선생님의 제자 4명이 지난 16일 대구 수성구의 한 식당에 모였다. 이들은 윤 선생님이 대성중(현 덕원중) 근무 당시 만난 제자들로 노진우 영주 참사랑외과의원 원장, 박경환 지름길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손기복 영남이공대 교수, 추중엽 서재외과의원 원장 등 4명이다. 윤 선생님의 첫 제자이기도 한 이들이 장학회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정말 단순했다.

"딱히 큰 계기가 있었다기 보다는 저희들이 선생님이 자신을 희생해서 제자를 돕는 모습을 학창시절부터 쭉 봐 왔었습니다. 30대 중반 쯤 됐을 때 '우리도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우리끼리 의미있는 일을 한 번 해 보자'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했고 그래서 당시 교직에 있으시던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죠."(손기복)

"이름을 '무명장학회'라고 한 건 장학회로써 실체나 규정이 없는데다 장학금 지급도 '제 마음대로'라서 그렇습니다(웃음). 대신 제 기준을 말씀드리면 첫 번째는 집안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성적도 좋고 품성이 착하면 1순위, 성적은 안 좋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이 2순위, 집안형편이 좋고 공부도 잘 하며 품성도 좋으면 3순위로 정했지요. 지금껏 3순위까지 내려간 경우는 없었습니다."(윤장근 선생님)

1년에 4번을 25년 동안 지급했으니 이 장학회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도 100여명에 달한다. 요즘도 학비 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학생들이 있을까 싶지만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어려운 학생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고.

'무명장학회'가 장학금을 지급하고 받은 영수증 사이사이에는 학생들이 고마움을 적은 편지들이 붙어 있었다. 실제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대학 진학 후 대기업까지 입사하면서 이후에 "자신도 돕고 싶다"고 뜻을 전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잘 돼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도움 받은 학생이 잘 성장해서 번듯한 사회인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크게 규모를 늘릴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진 게 기특하죠."(추중엽)

"5만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제 마음을 너무 행복하게 만들어줬고 청소년기 때 도움을 받은 친구들이 사회인이 됐을 때 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줄 거라 생각하니 행복한 마음은 5만원 그 이상이죠. 우리가 내는 이 5만원으로 느끼는 행복은 결국 좋은 스승을 만난 징표이기도 합니다."(노진우)

이 장학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이 회원들만이 알 것이다. 이들도 끝을 굳이 단정짓지 않고 있다.

"우리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한 이 장학회는 계속될 겁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저희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거니까요. 게다가 우리들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그걸 보는 것 또한 삶의 즐거움이고 행복입니다. 스승님과 친구들, 그리고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언제 끝날 지 모르겠네요."(박경환)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