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예술과 기술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예술가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캐치하고,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에 기술을 활용한다.
김안나 작가도 일찍부터 예술과 기술의 접목을 통한 작업을 이어왔다. 1979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성장기를 보냈고, UCLA 미술학과 학사, UCI 미술학과 석사를 졸업한 뒤 귀국해 경북대에서 디지털미디어아트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 가창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 작가로 활동하며 대구와 연을 맺은 그는 현재 광주과학기술원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예술과 기술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같지 않기에 예술을 베이스로 기술을 접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물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장난감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등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이런 작품들을 계속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융합이라는 게 실질적으로 어려운 것이지만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서로의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새로운 영역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0월 7일까지 갤러리 CNK(대구 중구 이천로 206)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Rhapsody 0/1: Digital Depth'에서는 다양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은 디지털 기술과 함께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소재로 한 스토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플로터(프린팅 기기)에 만년필을 꽂아 드로잉한 'ElNino & La Nina Series(엘니뇨 & 라니냐 시리즈)'는 기후 변화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엘니뇨, 라니냐를 사이보그 남매로 표현했다. 위트 있고 화려한 그림 속에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 의식을 담았다.
'Breath #Ⅰ, #Ⅱ, Waterfall' 작품은 담을 수 없는 숭고한 자연의 조각들을 작은 모니터 안에 담았다. 그는 본래의 사실적인 이미지가 아닌 인공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환경 문제를 얘기한다.
김 작가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관람객의 참여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의 이론인 '도넛 경제학'을 모티브로 구현한 'Lev-AI-Than'은 관람객들이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마치 게임처럼 스마트폰으로 도넛을 클릭해 소비하면, 이와 연동된 모니터 속 가상 세계에서 특정 유형의 캐릭터가 활성화되면서 자연재해나 전쟁 등 특정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Water has memory'는 즉석에서 관람객이 자신의 사진을 찍으면 인공지능(AI)이 이미지를 분석해 스토리텔링을 펼치는 작품이다. 각각의 관람객들은 해양 환경의 운명을 책임지는 주인공인 '수현'이 돼, 스크린에 등장하는 용신부인으로부터 자신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김 작가는 "관람객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무기력함을 벗어날 수 있게 하고자 했다"며 "AI는 실시간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터랙션이 가능하기에 점점 더 유용하게 활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이 사회가 그래', '현실은 원래 그런거야'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현실은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러한 움직임을 이끄는 건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상상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파워를 가진 예술과 기술을 잘 활용해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타개해나갈 힘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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