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결코 잊지 않아야 할…

신민건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경영본부 정책홍보팀 주임
신민건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경영본부 정책홍보팀 주임

경상감영공원을 지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꽤나 예스러운 건물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건물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어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쓰였던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9호 대구근대역사관이다.

대구근대역사관을 찾은 건 지난 8월 25일, 특별기획전 '대구에서 만나자-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과 연계한 역사 문화 강좌를 듣기 위해서였다. 강좌는 권비영 소설가의 특강과 특별기획전 전시 해설로 이루어졌다. 강좌 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현악 4중주 공연이 있었는데 여러 곡들 중 '고향의 봄'이 연주될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시큰하게 올라왔다. 고향을 잃고 울음에 차 노래를 불렀을 그 시대 선조들의 애환이 현악의 선율을 타고 오는 듯했다.

강좌의 시작을 연 권비영 소설가는 대한제국의 쓰라리고 처절한 역사를 직시하고 있었다. 써야 하고, 다루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소설을 쓸 때면 연도와 날짜로 나열된 시간적 흐름 사이사이에 그 시대 인물들이 처해진 입장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채워 나간다고 했다. 작은 체구였지만 단단한 소신을 가진 그녀는 작품 '잃어버린 집'과 '덕혜옹주'를 집필하였고 최근작 소설 '하란사'에서는 캄캄한 시대에 빛나는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독립운동가 하란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특강이 끝나고 2층 기획전시실에서 전시 해설이 이어졌다. 6월 9일에 시작하여 11월 5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1910년대 항일 비밀결사 조직 광복회를 조명하고 있었다. 1부에서는 1915년 8월 25일 결성된 광복회의 결성 과정과 조직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광복회 결성 당시의 대구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문서, 지도 등 다양한 사료(史料)를 볼 수 있었다. 이어진 2부에서는 광복회의 본부이자 중요 연락 거점이었던 대구경찰서 앞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와 대구 도심에서 벌어진 군자금 모집 활동 '대구 권총 사건'(1916년 9월 4일)을 사진과 신문 기사로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전시실 공간에 대구경찰서와 상덕태상회를 당시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어두어 대범했던 광복회의 활동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후 3부에서는 광복회의 와해 과정과 재판 관련 신문 기사, 판결문, 편지를 볼 수 있었고, 4부에서는 광복회를 중심으로 뭉쳤던 조국 독립에 대한 청년들의 열망이 계승되고 발전되어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의열 활동으로 이어진 점을 명시하고 있었다.

대구 중심가 인근 디저트 카페나 독립책방을 들렀던 이들이 대구근대역사관 앞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책 한 권의 양식을 쌓으며 대구근대역사관을 찾아 뜨거웠던 광복회 청년들의 숨결을 느껴보면 어떨까. 살아가는 현재에도,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에도 또렷이 응시하며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다. 치욕의 역사가 그러하고, 역사의 어두운 뒤안길에서 광복의 씨앗을 뿌렸던 모든 이들의 시간이 그러하다. 일제강점기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뜨겁게 흘렀던 그들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문화를 만방에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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