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는 방안을 제시한 데 대해 노동계는 노후를 보장할 대책으로 '정년 연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행 60세인 정년을 우선 국민연금 수령 연령인 65세로 맞춰 소득 공백 없이 좀 더 일하고 벌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앞서 도입한 임금피크제 부작용 탓에 '노후 소득 절벽'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년 연장 시 '일자리 부족난'이 심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할 전망이다.
◆노동계 '정년 65세 연장안', 국회서 다룬다
19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 김동명)이 제기한 정년연장 국민동의청원이 지난 14일 5만 명을 달성해 국회에 오른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공개일로부터 30일 안에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이번 청원 경우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되며, 심사해 채택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한국노총은 앞서 지난달 16일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연계한 정년연장을 위한 고령자고용법 및 관련 법률 개정' 국민동의청원을 냈다. 고령자고용법이 정한 법정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과 맞춰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늘리고 소득 공백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연금개시연령과 법정 정년이 맞지 않는 유일한 국가다.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5년의 공백이 있어 '소득 절벽'을 맞닥뜨린다.
김동명 위원장은 "초고령 사회 진입과 인구감소 시대에 정년 연장은 시대적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노후 빈곤 예방과 고령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국회는 정년 연장 입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지역 노동계도 몇몇 업종에서 정년 연장이 특히 시급하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제조업계와 섬유, 인쇄업계 등 숙련된 노동이 필요한 제조업종이다.
한국노총 대구지부 관계자는 "숙련공을 필요로 하는 차 부품 업계에선 노동자나 기업 모두 정년 연장을 원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생산직종에선 청년 신규 채용이 어렵기도 하고, 숙달된 이들의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도 은퇴 의사를 필수의료 및 공공병원에 채용해 지방 의료공백을 메우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전문의 양성에 최소 10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은퇴 의사를 필수의료에 투입하는 편이 의대 신설 등의 방안보다 더 일찍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계 "정년 지나도 고용 지속할 의사…법제화는 부담"
다만 기업 등은 정년 연장 필요성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법제화, 명문화에는 입장차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인건비 상승 부담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조가 임단협에서 '정년 만 64세 연장안'을 내놨으나 불발된 바 있다. 현재 현대차 정년은 만 60세다. 양측은 내년 상반기까지 정년 연장 관련 정부 정책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른 법 개정 등의 상황을 감안해 노사 협의 후 시행키로 했다.
지역 자동차 부품 업체들 사이에서는 '정년 연장 법제화'에는 부담을 느끼나, 기업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정년 이상의 근로를 보장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구 한 차 부품 업체 관계자는 "현행법상 '태만' 등을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기는 쉽지 않다. 법적으로 정년을 늘릴 경우 나이와 체력, 의지, 직책 등에 따라 생산성에 차이를 보이는 직원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며 "그보다는 기업이 정년 이후에도 일할 직원을 직접 선택하겠다"고 했다.
서중호 아진산업 대표도 "맡은 일을 떠넘기거나 부하 직원에게 갑질하는 등 근무성적 평정이 나쁜 직원은 정년퇴직을 원칙으로 하고, 정년이 임박했지만 능력 있는 직원에게는 전문가 교육을 시켜 미국 공장 책임자로 수년간 파견 근무를 시키며 고용을 연장하고 있다"며 "이에 회사 정년은 만 60세지만 65세, 70세가 되도록 일하는 직원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인구가 줄면 앞으로 공채에 응시하는 청년 지원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회사가 오래가려면 덩치를 키우고 직원 대우를 보장하며 성장에 기여할 사람이 취업하는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급식실 등 체력 소모가 큰 분야의 노동계에서도 정년 연장 법제화에는 부담을 나타냈다.
정경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장은 "급식실 노동자는 폐암, 어깨 부상 등 산업재해 위험이 높고, 소수의 직원이 많은 식수를 감당하므로 고령일수록 신체적 부담이 크다"며 "정년을 연장한다면 교육공무직에 대한 명예퇴직 신설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청년 일자리 감소' 우려도…노동계 "청년 포함 전 노동자 노후 보장"
정년 연장 논의는 청년-고령층 간 세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영계에선 나이 들고 임금 많은 직원들이 버티는 바람에 청년을 새로 채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내놓는다.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처럼, 정년을 보장하려면 고령층 직원 임금을 좀 더 삭감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정년 연장은 청년층의 미래 노후 문제까지 함께 돌보는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심순경 대구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임금피크제는 사용자 입장에서 기획된 것이지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기업이 고령층 직원 임금을 줄였다고 청년 노동자 임금을 더 올려주지도 않는다"며 "전반적으로 노동자 임금을 향상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용자 측이 취업을 빌미로 청·장년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공정'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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