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용형 씨 친일 논란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 고(故) 문용형 씨를 두고 친일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1920년생 문 씨가 1940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보통문관시험'(현재의 9급 시험 정도)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하고, 문 전 대통령 측은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고 말한다.

나는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1940년에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일제하에서 시청 계장을 했더라도 그를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문관시험'의 주관식 서술 문제에 합격 답안을 쓰자면 황국신민과 내선일체, 일한합병에 대한 시대적·역사적 의의를 칭송해야 했다. 설령 문 씨가 그런 답안을 썼다고 해도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용형뿐만 아니라 백선엽·박정희 등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선배 세대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던 것은 그들이 쌓은 악업 때문도, 그들의 선택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일본 천황에 충성 맹세를 하지 않고도 공무원이 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 역시 우리 선업이나 노력 덕분이 아니다. 운이 좋아 좋은 시절에 태어난 사람들이, 운이 나빠 비굴할 수밖에 없었던 선배 세대를 함부로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신사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평가도 아니다.

세상에는 어떤 경우에도 굳은 의지로 뚜벅뚜벅 옳은 길을 걸어가는 지사(志士)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여건이 호의적이어도 삿된 길을 가는 자들도 있다. 이 극소수의 지사와 삿된 자들은 상황과 무관하게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달리한다. 태어나고 보니 일제 치하였다. 살아남자면 일제가 원하는 공부와 충성 맹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제의 공무원이 되고, 군인이 된 사람들을 모두 친일파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사흘을 굶은 나머지 남의 집 담을 넘은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비난하거나, 사흘을 굶고도 남의 집 담을 넘지 않은 사람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다시는 사흘을 굶는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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