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정말 예전에는 '기분이 조크든요' 이렇게 말했어요?"
망설임이나 어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MZ세대의 '미치도록 맑은 눈동자' 앞에서 나는 속이 뜨끔했지만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아니거덩요. 그런 말투 쓴 적 없걸랑요."
주춤한가 싶더니 또 1990년대…. 94년의 어느 날, '남의 시선은 느끼지 않습니까?' 라고 대뜸 불만 어린 목소리로 인터뷰를 요청하던 기자 '아저씨'를 향해서 '아뇨,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구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한 여대생의 말투가 요즘 인기 있는 개그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는 바람에 90년대 말투에 관한 MZ세대들의 관심이 높아진 모양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그 시절을 파낼 작정인지. 10년 단위로 문화를 끊어서 분류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한 시대를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재탐색하는 경우가 과연 예전에도 존재했을까?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90년대에는 2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70년대를 추억하는 일이 그리 잦지 않았다. 그 시절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그런 시도를 조금 끔찍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를 획정하기에 내 나이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나에게 70년대는 일종의 '역사'와도 같았다. 말하자면 90년대의 대중은 70년대의 문화를 즐기고 추억하기보다는 학습하려고 했던 것 같다. 90년대에 서서 바라본 70년대는 어려운 한자어로 점철된 세로쓰기식 조간신문을 읽는 듯한 아득함이 있었다. 그 20년 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적어도 내 기억 속 90년대는 평화롭고 멋졌다. 정권교체에 관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그때 나는 겨우 열 몇 살이었으니 시대를 향한 적개심에 두 눈을 부릅뜨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럴 만한 사유도 별로 없었다. 동네에서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했던 '각그랜져'는 단종되었고, 새로 출시된 '뉴그랜져'는 생각보다 길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grandeur가 '위엄'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트로트를 듣는 세대와 서태지를 듣는 세대의 경계가 명확해졌고, 조용필이나 이미자를 따라하지 않았던 부모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의 옷과 머리를 흉내 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이없어 고개를 젓는 일이 잦았다.
조금씩 풍족해지기 시작한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권력을 향한 구호 대신 스타를 위한 함성을 지르는 것이 익숙해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이전 시대가 '정치적 전환점' 혹은 '경제적 분기점'을 기준으로 변모해왔다면 90년대는 건국 이래 가장 파격적인 '문화적 변환점'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 변환점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국면을 맞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방향이나 노선에 전환이 없이 그 형태만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문두에 던진 질문, '우리가 여전히 90년대를 다시 보고자 하는 이유'에 관한 해답은 바로 새로운 문화의 '시작점을 추억'하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됐다고 하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익숙하고, 그렇다고 진행형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아련해져버린 한 시대에 관한 꽤 '기분이 좋은' 호기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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