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19>나무꾼의 질문에 어부가 대답하다

미술사 연구자

이인상(1710-1760),
이인상(1710-1760),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종이에 담채, 22.9×60.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가의 나지막한 바위 언덕에 키 큰 나무 두 그루가 부채꼴 바깥으로 뻗었고 그 아래엔 배 한 척이 있다. 강과 먼 산줄기를 배경으로 배 위의 어부, 그와 마주한 나무꾼이 있는 고사인물화다. 삿갓 쓴 배 위의 어부는 윗옷을 풀어헤치고 한쪽 무릎을 세운 채 편안하게 앉아있고 나무꾼도 한가로운 뒷모습이다. 무언가를 손에 든 소년이 다리를 건너 이들에게 향한다.

어초문답도는 중국 송나라 사상가 소옹의 저술 '어초대문(漁樵對問)'에서 나왔다. "나무꾼과 어부가 질문하고 대답하다"라는 이 글은 어자(漁者)와 초자(樵者)로 설정한 캐릭터의 문답으로 설명되는 소옹의 철학이고, 어초문답도는 성리학의 선구자인 소옹에 대한 공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어초문답도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그려졌고 10여 점이 전한다.

이인상 특유의 전서가 고아(古雅)한 맛을 더하는 '어초문답도' 제화는 다음과 같다.

채어산(採於山) 미가여(美可茹) 조어수(釣於水) 선가식(鮮可食)/ 산에서 캐오니 맛있어 먹을 만하고 물에서 낚시하니 신선하여 먹을 만하다.

희작(戱作) 어초문답(漁樵問答) 방(倣) 고인(古人) 필의(筆意)/ 재미삼아 어초문답을 그리며 옛사람의 필의(筆意)를 본받다.

이인상이 인용한 구절은 당나라 한유가 고향으로 돌아가 은자가 될 친구에게 지어준 송별의 글인 '송 이원 귀 반곡 서(送李愿歸盤谷序)'에 나온다. 제화로 보면 그림 속 인물은 '어초대문'의 어자와 초자가 아니라 은자의 보편적 표상인 어부와 나무꾼이다.

그러나 어부와 초부가 마주보며 대화하는 어초문답도의 전통을 따른 데다 '어초문답'을 그렸다고 했기 때문에 소옹의 철학적 문답이 주제라고 보아야할 것 같다. 이렇게 그림과 제화의 결이 다르거나 제목, 제화, 그림 내용 등이 일치하지 않아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다의성이 이인상의 부채그림에 종종 보인다.

부채의 그림과 제화를 둘러싼 담론의 실마리를 심어놓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채그림만큼 소장자와 친숙하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 지고, 대화의 주제의 된 그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러러 모시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아끼며 자랑스럽게 활용한 것이 부채그림이다.

백자 달항아리도, 소반도, 민화도, 간찰도 그렇게 '사용'된 '미술품'이지만 화가의 작품을 휴대하며 바람을 일으킨 것은 또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감상 이외의 다른 목적이 없는 회화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그렇게 격조 높았다.

미술사 연구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