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뉴 관광지] <32·끝> 문향의 고장 경북 영양

문필봉 정기 받아 박사 14명 배출한 '주실마을'
현대 문학의 거목 이문열 소설가의 고향 '두들마을'
항일 시인 오일도 선생의 향취 간직한 '감천마을'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 있는 두들마을의 전경. 두들마을은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 있는 두들마을의 전경. 두들마을은 '언덕 위 마을'이란 뜻처럼 지대가 높은 산지에 자리잡고 있다. 영양군 제공

경북 영양지역에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한 마을들이 존재한다. 구한말 항일의병장으로 활동한 벽산 김도현 선생이 만든 검산성과 영화 '암살'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선생의 지경마을 등 다양한 독립투사를 배출한 특색있는 마을들이 있다.

많은 독립운동가만큼이나 영양에서는 유독 유명 시인과 학자, 소설가 등이 많이 배출돼 문학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문향의 향취가 가득한 조지훈 시인의 주실마을과 오일도 시인의 감천마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유명한 한국 문학사의 거목 이문열 작가의 고향 두들마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마을을 방문해 보는 것도 영양 여행의 백미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서 태어난 조지훈 시인의 모습. 영양군 제공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서 태어난 조지훈 시인의 모습. 영양군 제공

◆문필봉 정기 받은 학자의 요람 '주실마을'

마을 초입부터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은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한양 조씨 집성촌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만큼 마을 내부에는 경북도 민속자료 제42호 옥천종택 등 여러 문화재가 지금도 그대로 보존돼 오고 있다. 원래 이곳은 주씨가 많이 살았지만, 1630년 조선 중기 조광조의 친족 후손인 조전 선생이 사화를 피해 정착하게 되면서 주실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마을에는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경북도기념물 제78호)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잡고 있다.

주실마을의 입구에는 외부에서 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일명 '주실숲'이라는 숲이 있는데 장승을 뜻하는 사투리를 섞어 '수구막이 숲'이라고도 불려오다 최근에는 '시인의 숲'이라 불리고 있다.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여 년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뤄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영양 주실마을 내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의 모습. 호은종택 맞은 편에는 붓의 모양을 닮은 봉우리 문필봉이 마주하고 있어 풍수학적으로 많은 학자가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영양군 제공
영양 주실마을 내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의 모습. 호은종택 맞은 편에는 붓의 모양을 닮은 봉우리 문필봉이 마주하고 있어 풍수학적으로 많은 학자가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영양군 제공

주실마을을 찾았다면 호은종택과 마주하는 문필봉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 요소다. 호은종택의 대문을 등지고 맞은편을 보면 여러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중 대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봉우리가 바로 문필봉(文筆峰)이다. 풍수학에서는 붓의 모양을 닮은 봉우리(문필봉)를 마주한 집이나 마을에서는 훌륭한 학자가 태어난다고 알려졌다. 주실마을의 문필봉은 그 봉곳한 생김새도 그렇지만 옆으로 물길까지 끼고 있어 붓에 물이 더해지는 최고의 지형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작은 시골 마을인 이곳에서는 14명의 박사가 배출되기도 했다.

주실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재물과 사람, 문장은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조지훈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도 설치돼 운영 중이다.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에 있는 조지훈 선생의 생가 호은종택에는 마주보고 붓을 닮은 문필봉이라는 봉우리가 보인다. 풍수학적으로 문필봉을 마주해 집을 지으면 많은 학자가 태어난다고 전해진다. 사진은 조지훈 선생의 생가 맞은 편에 보이는 문필봉의 모습. 영양군 제공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에 있는 조지훈 선생의 생가 호은종택에는 마주보고 붓을 닮은 문필봉이라는 봉우리가 보인다. 풍수학적으로 문필봉을 마주해 집을 지으면 많은 학자가 태어난다고 전해진다. 사진은 조지훈 선생의 생가 맞은 편에 보이는 문필봉의 모습. 영양군 제공

조지훈 시인의 미망인 김난희 여사가 직접 현판을 쓴 문학관에 들어서면 560㎡ 규모에 단층으로 지어진 목조 기와집이 'ㅁ' 자 모양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조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흘러나오고, 동선을 따라 조지훈 시인의 삶과 그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내부에는 시인의 어린 시절 자료들과 광복 및 청록집 관련 자료, 격정의 현대사 속에 남긴 여운, 가족사 김 여사의 글과 작품 등이 한 인물의 삶을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게 돼 있다.

전통을 지켜온 다양한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영양 두들마을 내 고택에서 마을을 바라 본 모습. 영양군 제공
전통을 지켜온 다양한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영양 두들마을 내 고택에서 마을을 바라 본 모습. 영양군 제공

◆전통문화와 문학의 향기 가득한 '두들마을'

영양 석보면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병원인 광제원(廣濟院)이 있던 곳으로 '언덕(두들)'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으로 두들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1640년(인종 18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들어와 학문연구와 후학을 양성하는데 전념하면서 재령 이씨(載寧李氏) 집성촌이 됐다.

마을 옆 둔덕에는 석계 선생의 서당인 석천서당과 석계고택이 남아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화매천 주변 암석에는 석계 선생의 넷째 아들인 항재 이숭일이 새겼다는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의 글씨가 아직도 남아있다.

두들마을에는 문학인들의 발걸음도 끊기지 않는다. 이곳은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한국 문학사의 거목 등으로 일컫는 소설가 이문열 씨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언덕위에는 수백년된 꿀밤나무 5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두 차례의 난으로 궁핍해진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한 석계 이시명과 장계향 부부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엄재진 기자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언덕위에는 수백년된 꿀밤나무 5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두 차례의 난으로 궁핍해진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한 석계 이시명과 장계향 부부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엄재진 기자

1948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서 태어난 이문열 씨는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중퇴하고 1977년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다양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1980년대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문학 평론가들은 이문열 씨의 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문장력이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대표작으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젊은날의 초상', '시인과 도둑' 등 교과서에서 배웠던 작품들이 가득하다.

이곳 두들마을은 이문열 씨의 소설 '선택'의 직접적인 배경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의 많은 작품 속 인물들이 삶의 역경을 펼치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많은 의병 대장으로 활동한 내산(奈山) 이현규 선생과 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사건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이돈호·이명호·이상호 선생, 항일 시인 이병각·이병철 선생 등도 이 마을 출신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음식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장계향 선생의 교육에 대한 덕행과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영양 감천마을에는 오일도 시인을 추모하는 소공원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오일도 시인의 작품들이 다양한 조형물 형태로 제작돼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진은 오일도 시인의 지하의 달 조형물 모습. 영양군 제공
영양 감천마을에는 오일도 시인을 추모하는 소공원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오일도 시인의 작품들이 다양한 조형물 형태로 제작돼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진은 오일도 시인의 지하의 달 조형물 모습. 영양군 제공

◆오일도 시인의 시가 서려있는 '감천마을'

영양군 영양읍의 감천마을은 맛있는 물이 샘솟고 감나무가 많아 감천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이곳은 400여 년 간 낙안 오씨들이 살아온 집성촌이자 항일 시인 오일도(1901~1946)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감천마을은 근대화 과정에서 가옥들이 개량돼 전통 마을의 분위기가 사라졌지만, 지금까지도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웅장한 44칸 기와집은 예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다.

이 고택은 일도(一島) 오희병(吳熙秉, 1901~1946) 선생의 생가이다. 오일도 시인의 본명은 희병이고, 일도는 그의 아호였다.

오일도 선생은 낭만주의 시인이며 민족주의 시인이다. 아울러 철학을 전공한 만큼 종교 철학적인 경건(敬虔)한 시를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일도 시인의 생가 영양
오일도 시인의 생가 영양 '감천마을' 주변에는 반변천과 함께 절벽에 수림이 형성돼 있어 한폭의 그림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영양군 제공

마을에는 유서깊은 고택의 정취에 어울리는 북카페가 마련돼 있고 시인과 관련한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오일도 시인의 '저녁놀' 시비가 있는 소공원도 마련됐다. 천천히 걸어다니며 둘러보기 좋은 이곳 마을은 시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조형물과 그의 시 '바람이 붑니다', '봄비', '눈이여 어서 나려다오' 등이 새겨진 조형물을 관람하기 좋다.

특히 생가 주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측백수림이 군락을 이뤄 시원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자락의 측백수림과 아래 흐르는 반변천, 아름다운 침벽공원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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