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정민 기자의 '니하오, 항저우'] 중국의 힘 과시…조금은 불편했던 개회식

관중석 사이 '와!' 함성 유도…20세기 권위주의 정권이 보였다
초대형 LED, 디지털 불꽃놀이… 기술 뽐냈지만 권위적 모습 여전
대만 입장 땐 시 주석 얼굴이 전광판에 함께 비쳐

23일 중국 저장성의 성도 항저우의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 풍경. 채정민 기자
23일 중국 저장성의 성도 항저우의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 풍경. 채정민 기자

큰 규모의 국제 스포츠 대회, 이른바 '메가 이벤트'는 스포츠 교류뿐 아니라 개최국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중국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달라진 위상을 뽐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화려하지만 보기에 편하지만은 않은 개회식이기도 했다.

개회식은 23일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진행됐다. 중국은 이 자리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마음껏 선보였다. 본부석 맞은편 관중석 앞에 거대한 LED 화면을 띄우고 중국 특유의 대규모 불꽃놀이 대신 '디지털' 불꽃놀이로 잔치 분위기를 냈다. 무대였던 스타디움 바닥에도 화면을 설치해 강과 바다 등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 띄웠다.

확실히 개회식은 중국의 기술력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긴 했다. 하지만 자기 중심적, 권위적인 면이 눈에 띄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부 관중석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하나의 중국'이 강조된 모습도 보였다.

현지 시간 6시 30분 무렵부터 1시간 이상 무대엔 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은 채 중국말로 얘기를 쏟아냈다. 한 번씩 관중들이 파도 타기를 하고, 박수나 함성을 보내는 걸 보니 응원을 어떻게 하자는 말인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전광판에 영어로 설명이 나오지도 않으니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중국말을 모르는 이들로선 1시간 이상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미디어석에 모여 앉아 있던 각국 기자들 역시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숨을 쏟아냈다. 중국말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일부 관중석의 움직임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관중석 사이 통로 곳곳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은 수시로 박수와 함성을 유도했다. 입장 후 관중석 1층에 자리한 참가 선수단에게까지 호응해달라고 자꾸 손짓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규칙적으로 박수를 치고 '와' 하는 함성을 내지르는 건 20세기 때 독재 정권의 스포츠 축제를 연상케 했다. 자연스런 응원에 익숙한 이들에겐 꽤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선수단 입장 때 비친 풍경 중에서도 판단하기 애매한 게 보였다. 이번 대회에 마카오와 홍콩은 중국과 한데 묶어 나오는 대신 차이니스 마카오, 차이니스 홍콩이란 이름으로 각각 참가했다. 따로 출전한 대만 역시 차이니스 타이페이란 이름으로 소개됐다.

한 국가 선수단이 소개 후 입장하면 스타디움 전광판 화면엔 그 나라 지도자 등 대회에 참석한 대표자 얼굴이 잠시 띄워졌다. 한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도 이날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얼굴이 잠깐 비춰졌다. 대표가 참석하지 못한 경우엔 아예 화면에 얼굴을 띄우지 않았다.

하지만 대만이 입장했을 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관중들은 시 주석의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앞서 차이니스 마카오와 차이니스 홍콩이 입장할 때도 그랬다. 물론 국제 정세상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참석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아예 특정인을 비추지 않는 대신 시 주석의 얼굴을 띄운 건 대만인들이나 중국을 견제하는 나라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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