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 팔공산 자락에 시꺼먼 폐기물…“침출수 취수원 인근 하천으로 줄줄”

대구 동구진인동 임야 불법 매립 의혹
마을주민 "악취 때문에 산책도 못 해…국립공원 팔공산 이렇게 오염시킬 수 있나" 원성
제방 바로 아래 취수원 유입되는 능성천 흘러… 정화작업 촉구

21일 공중에서 촬영한 대구 동구 진인동의 한 임야. 불법 폐기물 매립 의혹이 불거진 이 땅 옆에는 공산정수장으로 유입되는 능성천이 흐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1일 공중에서 촬영한 대구 동구 진인동의 한 임야. 불법 폐기물 매립 의혹이 불거진 이 땅 옆에는 공산정수장으로 유입되는 능성천이 흐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국립공원으로 승격한 팔공산 일대가 악취가 나는 폐기물을 묻는 쓰레기통입니까? 이 근처만 와도 악취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18일 대구 동구 진인동의 한 임야에 검은색 흙무더기가 2m 가까운 높이로 쌓여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들끓는 파리 떼를 쫓아내며 땅을 조금 파보니 시꺼먼 물질이 덩어리째 나왔다. 육안으로는 일반 흙과 구분이 쉽지 않았지만, 현장에 모여 있는 마을주민들은 "무기성 오니(슬러지) 등 폐기물이 분명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주변에는 검붉은 침출수가 고여 있었는데, 인접한 제방 바로 아래로는 능성천이 흐르고 있었다.

'국립공원' 팔공산 자락에 있는 한 임야에 슬러지 등 폐기물이 불법적으로 매립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이곳은 정수장까지 연결된 하천과 인접해 있어 추가적인 피해도 우려된다.

인근 주민들은 지난 9월 초부터 해당 부지에 각종 폐기물이 뒤섞인 토사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 주민인 이모(81) 씨는 "이 사토들 때문에 일대에 악취가 진동해 아침마다 산책을 하는 주민들이 고역을 치르고 있다. 몇몇은 이 근처로는 얼씬도 안 한다"라며 "국립공원이자 청정구역인 팔공산 일대가 이렇게 오염돼도 되느냐"고 했다. 최모(79) 씨는 "25t(톤) 화물차가 200대 가까이 오가며 오염된 사토를 쏟아부었다"며 "최근 비가 오면서 이 사토들이 그대로 하천에 유입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제방 바로 아래로 흐르는 능성천이 대구의 취수원 중 하나인 공산댐까지 연결된다는 점이다. 인근 주민들은 "최근 연일 내린 비로 폐기물과 그 침출수가 능성천을 타고 공산댐까지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해당 지점에서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약 1.7㎞만 가면 상수원보호구역이 시작된다. 이어 물길은 공산정수장이 있는 공산댐에 이른다. 공산정수장은 북구 산격동과 검단동, 복현동, 대현동 등 일부 구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18일 폐기물 불법 매립 의혹이 제기된 대구 동구 진인동의 한 임야. 사토더미에서 침출수가 나와 고여 있다. 최근 연일 내린 비로 폐기물과 그 침출수로 의심되는 것들이 능성천을 타고 공산정수장까지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중언 기자
18일 폐기물 불법 매립 의혹이 제기된 대구 동구 진인동의 한 임야. 사토더미에서 침출수가 나와 고여 있다. 최근 연일 내린 비로 폐기물과 그 침출수로 의심되는 것들이 능성천을 타고 공산정수장까지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중언 기자

전문가들은 폐기물을 불법으로 매립한 정황으로 보인다며, 관할 지자체의 조속한 대책을 요구했다. 현장을 살펴본 구본호 한국녹색환경협회장은 "사토와 폐기물을 섞어서 불법으로 매립한 사실이 명백해 보인다. 성분 분석을 해 봐야겠지만 일단은 가축분뇨 슬러지 등 축산 폐기물로 추정된다"라며 "계속 방치해두면 주변의 정상적인 토사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구시와 동구청은 하루라도 빨리 정화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작 논란의 임야 지주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주 A씨는 "성토업체와 계약할 때는 양질의 흙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로 합의됐다. 폐기물이 유입된다면 원상복구를 하기로 했다"라며 "그러나 이후 상황은 약속과 달랐다. 악취가 심하고 주민들의 민원도 거세서 업체에 빨리 치워달라고 계속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매일신문의 취재가 시작된 뒤인 21일 오전, 해당 성토업체는 가득 쌓여있던 사토더미 중 일부를 거둬 간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 대표 B씨는 "합법적으로 승인을 받은 재활용 흙을 사용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재활용 흙이다 보니 다소 냄새가 나고 새까맣게 보이지만, 불법 폐기물은 아니다. 악취에 대한 민원은 일부 주민들이 과장한 면이 있는 것 같다"라며 "그런데 마을주민들이 계속 폐기물이라느니 불만을 표해서 성토된 흙 중 일부를 수거했다"고 주장했다.

21일 대구 동구 진인동 능성천에서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들이 수질검사를 위해 물을 용기에 옮겨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1일 대구 동구 진인동 능성천에서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들이 수질검사를 위해 물을 용기에 옮겨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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