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성걸 칼럼] 사필귀정(事必歸正)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2023년 9월 21일은 우리 헌정사에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하루 동안 헌정사 초유의 일이 3건이나 일어났기 때문이다. 첫째와 둘째는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현직 검사인 안동완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일이다. 특히 국무총리 해임의 경우 대통령이 수용할 리 없어 사실상 의미가 없는 일임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서 막무가내로 가결시켰다. 안동완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의 간첩 사건 기소를 담당했던 안 검사가 수사 지휘 체계에 있지 않았음에도 민주당은 안 검사만 탄핵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현직 검사에 대한 첫 번째 탄핵이라는 점에서 역시 사상 초유의 일이다. 셋째는 제1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일이다.

적지 않은 세월, 정치평론을 해 온 필자는 솔직히 이번 체포동의안도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었다. 그런데 대부분 적중률이 높았던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 당론에도 불구하고 왜 통과되었을까.

이재명 대표가 6차례나 검찰 소환을 받으며 대표 리스크는 한계에 달했고, 소위 '개딸' 팬덤 정치는 당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이재명 리스크가 계속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비명계 의원들이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이 대표는 감옥에 가서도 대표직을 사퇴하지 않고 공천권을 행사할 사람이라는 평가가 파다했기 때문이다.

명분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20여 일 전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지난 2월 제출된 체포동의안은 부결되었지만,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통과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미 당은 친명과 비명으로 분열 직전까지 치닫고 있었고, 기소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 대표의 범죄 의혹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졌다. 검찰 소환에 응하면서도 갖가지 특권을 행사하려 했는가 하면, 대부분 묵비권을 행사하고 나오면서 검찰이 증거도 없이 재미 없는 소설을 쓴다고 비판하곤 했다. 6차 소환에서는 조사에 응해 웬일인가 싶었더니 당연히 해야 할 녹화를 스스로 거부한 후, 조사 결과를 요약한 조서에는 서명도 하지 않고 나와 버렸다. 그래도 당 대표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주장하는 이 대표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론은 남아 있었다.

결정타는 이 대표 자신이 날렸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시점에 이 대표는 SNS를 통해 반대해 달라는 '부결 호소문'을 내놨다. 19일이나 단식한 사람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1천989자의 부결 호소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난 6월, 국회에서의 당 대표 연설까지 모두 4차례에 걸친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린 것이다. 빈정대는 말투와 비아냥거리는 행동으로 신뢰가 부족했던 이 대표가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꺾은 것이다. 누가 봐도 자가당착인 이 행위는 민주당의 미래보다 자신의 구속을 우려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었고, 4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 또는 기권함으로써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이 대표의 영장실질심사는 본인의 출석 여부에 상관없이 9월 26일 오전 10시에 열리고, 구속 여부는 사법부가 결정할 것이다. 이 대표가 구속되면 정치적 사건이 아닌 형사피의자로서 구속된 최초의 야당 지도자가 된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 이 대표의 행적은 한때 원내 제1당의 대통령 후보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부도덕했으며, 상대방에 대한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대장동 사업을 자신이 설계했다고 주장하더니 불리해지자 아랫사람들이 보고도 없이 알아서 한 일이란다. 백현동은 국토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더니 국토부가 성남시가 판단할 문제라고 회신한 문건이 나오자 정치적 탄압이요, 검찰 공화국이란 주장만 반복했다. 영광은 자신이 누리고 책임은 부하에게 돌려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에선 차라리 연민이 느껴졌고, 제1야당의 대표직으로 불법을 가리려는 시도는 국민의 분노를 불렀다. 이제라도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법의 심판을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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