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마지막 황세손 이구

황대욱 한국문화관광콘텐츠협의회장

황대욱 한국문화관광콘텐츠협의회장
황대욱 한국문화관광콘텐츠협의회장

1950년 정부 조직 교통부에 관광계가 신설되고 1961년 관광사업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우리나라 관광 행정 업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경주는 열악한 도시로 불국사 경내에 일제가 건설한 철도호텔(현 불국사박물관 위치)이 있어 어색한 조화를 이루던 시절로 제3공화국 대통령 선거(1963.10.15) 결과를 기다리는 박정희 후보가 머물다가 대통령 당선 통지를 받았던 곳이다.

한국 관광 최초 연구서 '한국관광사업조사보고서'(1967·카우프만 모톤, D·교통부관광국)가 나오자, 당시 월성군수를 역임한 권태룡이 경주시장에 취임하여 1968년 경주관광개발에 관한 기본계획안을 만들었다.

이후 전문 용역기관에 의뢰하여 세미나 개최 후 1969년 3월에 경주시 '관광개발기본계획' 수립 보고서를 완성했다.

필자의 자료를 토대로 당시 내무부에 근무한 이원식 전 경주시장과 경주시청에서 관광 업무를 담당한 이의강 국장을 만나 전 관광계장 이신택 씨와의 통화로 당시 업무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한말 조선의 고종 황실은 무늬만 대한제국으로, 자치와 통치권은 잃어버린 슬픈 과거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오래전 필자가 방문했던 중국 난징 대학살 기념관의 문을 나서며 보았던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글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조선 총독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끌려간 10세의 어린 황태자 영친왕은 나중에 일본이 정해준 황족의 딸 이방자와 결혼해야 하는 슬픈 운명으로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의 고독한 삶을 살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첫아들 진(晉)이 죽고, 둘째 아들 구(玖)는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광복됐지만 어느 나라에도 환영 못 받던 신세에서 맥아더 장군의 배려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뉴욕 건축사무소에 입사하여 높은 기술력을 익혔다.

이구는 연상의 배우자 줄리아 멀록을 만나 결혼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입국 불허로 귀국하지 못하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허락으로 병상의 영친왕 부부와 덕혜 옹주를 포함해 이구 부부도 1963년 11월 22일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귀국한 이구는 종묘제례와 대학에서 '건축설계학'을 강의하며 '트렌스아시아컴퍼니' 부사장으로서 경주시가 의뢰한 '관광개발기본계획'을 완성한다.

이 보고서는 관광자원의 보존 및 개발, 외래객 수용 태세 정비, 비계절(여름·겨울) 대책, 관광지 시민의식 고양(자연보호·National Trust 조직) 등의 계획을 담았다.

또, 건의 사항인 '관광문화도시개발법' 입법 조치,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관광개발공사와 관광금고 설치, '관광청' 설치, 국내 선전과 해외시장 개척 도모 등 아직도 이루지 못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 최고 대학에서 전공하고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실무를 익힌 황세손 이구의 보고서가 청와대에 전달되어 대통령 지시 사항으로 국가 계획에 반영된 경주관광개발 계획은 국내 최초 관광단지인 보문관광단지를 탄생시켜 최초 국제회의장 건설, PATA 총회도 개최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마지막 황세손 이구의 귀국 60년을 맞아 '2025 APEC 정상회의'를 유치하고, '황리단길' 같은 킬러 콘텐츠 상품을 만들어 관광객 만족을 이끌어 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