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시안게임] 펜싱 전설 구본길, 아시안게임 4연패 실패…후배 오상욱에게 왕좌 물려줘

지난 아시안게임 맞대결에선 구본길이 오상욱에 승리
5년 만의 재대결에서 오상욱이 구본길에 패배 안겨
구본길, 오상욱에 축하 "후배가 우승해 다행이고 기뻐"
단체전서도 선전 다짐, 파리 올림픽 재대결도 기대

25일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오상욱(오른쪽)과 구본길이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오상욱(오른쪽)과 구본길이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의 간판 구본길(왼쪽)과 오상욱이 25일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결승 때 맞대결, 오상욱의 승리로 경기를 끝낸 뒤 믹스드존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의 간판 구본길(왼쪽)과 오상욱이 25일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결승 때 맞대결, 오상욱의 승리로 경기를 끝낸 뒤 믹스드존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아름다운 패배였고, 값진 승리였다. 대구가 낳은 '펜싱의 살아있는 전설' 구본길(34)이 아시안게임 4연패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구본길의 앞을 막아선 건 지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구본길에 졌던 후배 오상욱(27)이었다.

대구 오성고 출신인 구본길은 25일(한국 시간)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결승에 출격, 대회 4연패를 노렸으나 오상욱에게 7대15로 패했다.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구본길에게 져 은메달에 머물렀던 오상욱은 이번에 선배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오상욱은 큰 위기를 맞지 않고 결승에 진출했다. 구본길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5년 전 대회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당시에도 오상욱은 구본길과 결승전에서 맞붙었는데 구본길에게 단 한 점 차로 패배, 은메달을 목에 거는 데 그쳤다.

당시 구본길은 마음 놓고 웃질 못했다. 오히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보였다. 당시 오상욱이 금메달을 따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 양보 없는 승부를 펼치는 게 당연하지만 후배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다행히 둘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합작,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오상욱과 달리 구본길이 결승까지 오르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8강전이 최대 고비. 개최국인 중국의 쉔천펑을 맞아 예상 밖으로 고전했다. 경기 중반에 흐름을 넘겨준 뒤 10대14까지 밀렸다. 벼랑 끝까지 몰리며 그대로 무너지나 싶었다.

하지만 이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구본길은 연속으로 5점을 뽑아내는 대역전극을 연출, 4강 진출을 확정했다. 4강전에서도 유시프 알샤믈란(쿠웨이트)에게 초반 1대6으로 뒤지다 15대10으로 역전승했다.

이날 밤 5년 만에 다시 시작된 승부는 치열했다. 서로 견제 없이 신호가 울리자마자 정면 충돌했다. 계속 서로 맞서며 누구의 검이 더 빠른지 속도 대결을 벌였다. 누군가 한 점을 내주면 다른 이가 곧바로 따라붙었다. 그때마다 득점을 올린 선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1라운드는 오상욱이 8대7로 근소하게 우세를 보였으나 승부의 향방을 점치긴 어려웠다.

하지만 이후 점수 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상욱이 적극적인 공세를 펴면서 11대7로 달아났다. 잠시 한숨을 돌린 뒤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오상욱의 공격은 연거푸 적중, 순식간에 15점에 도달했다. 경기가 끝난 뒤 마스크를 벗은 구본길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환한 미소로 후배의 왕좌 등극을 축하했다.

구본길은 경기 후 "아시안게임 4연패는 쉽지 않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아쉬운 건 없다. 4연패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며 "더구나 후배인 (오)상욱이가 우승해서 다행이다. 상욱이가 금메달을 따게 돼 나도 기쁘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다"고 했다.

그는 또 "경기 전 상욱이와 열심히, 멋잇게 해보자고 했다. 지난 대회 때와 달리 이번엔 마음이 편했다. 지금은 은메달을 딴 게 마음이 편하고 후련하다"며 "단체전이 남아 있다. 한국이 아시아 최강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시상대에 오르기 위해 믹스드존을 벗어나는 구본길의 등 뒤로 취재진이 질문을 던졌다. 내년 파리 올림픽 때도 결승에서 오상욱과 대결하는 걸 볼 수 있겠느냐였다. 구본길이 떠나가며 남긴 대답은 한 마디. "그게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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