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코앞이다. 고로 추석 풍경이라함은 몇 가지 장면들이 있을텐데…송편 빚기, 윷놀이 하기, 쥐불놀이... 등 아닐까? 이에 반해 요즘 추석은 '귀성'보단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많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올렸던 '제사'도 과감히 생략하거나 대형마트에서 음식을 사와 간소하게 제사를 지낸다.
"우리의 고유 풍습 귀한 줄도 모르고…"라며 고개를 내젓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분명 옛 추석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시절만의 '정'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젊은 세대의 부모님들도 '명절'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있다는 요즘, 새롭게 변하는 추석 명절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도 필요하다.
마냥 요즘 추석 풍경의 모습을 추켜세우는 건 아니다. 과거 추석의 추억과 요즘 추석의 풍경을 함께 살펴보며 적절히 '믹스매치' 해보는 것도 좋다는 게 이번 MMM '추석편'의 주제! 자자, 우선 과거 추석의 모습으로 추억여행부터 떠나보자.
◆8살 김 어린이의 일기로 보는 그 시절 추석
-1998년 10월 4일
오늘은 작은 추석이라 할머니집으로 갔다. 할머니가 내일 손님이 많이 온다고 해서 미리 송편을 만들자고 했다. 나는 달콤한 콩고물이 들어간 송편이 좋은데 할머니는 떡고물로 또 팥을 준비했다. 나는 많이 안 먹어야지.
송편 만들기는 재밌다. 작년에도 할머니와 엄마와 송편을 만들었다. 맨날 반달모양만 만들어서 오늘은 특별한 모양의 송편을 만들기로 했다. 할머니와 엄마가 열심히 주물러 커다란 공처럼 만든 흰색 반죽을 큰 그릇에 담아오면 나는 반죽을 조금씩 떼 송편을 만든다. 예쁜 송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조금 뗀 반죽을 손으로 돌돌 굴려 동그랗게 만든 뒤 넒게 펴주면 된다. 반죽 위에 숟가락으로 고물을 얹고 반으로 접어주면 끝이다. 할머니는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나중에 결혼해서 예쁜 아기를 낳는다고 했다. 예쁜 아기를 낳고 싶어서 열심히 송편을 만들었다.
오순도순 모여서 송편을 만들다 할머니가 떡을 쪄야겠다며 송편 몇 개를 가져갔다. 시간이 지나자 찐 송편이 나와서 맛을 봤다. 솔직히 송편이 좀 더 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고생한 할머니와 엄마를 위해 말은 하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내가 만든 송편이라고 자랑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1998년 10월 5일
추석이다. 전날 작은추석이라고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침부터 엄마가 한복을 입으라고 했다. 설날도 아닌데 왜 한복을 입어야 하느냐고 투정을 부렸지만 엄마가 친척들한테 예쁘게 보이면 좋다고 해서 한복을 입었다. 아침 일찍부터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서 엄청 피곤했다. 할머니 집에서 엄마와 숙모는 제사 음식을 만든다고 아침부터 바빴다. 나는 방에서 할머니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제사가 끝나고 아침을 먹기 위해 제사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나는 아빠 옆으로 가서 음식 자르기를 도와줬다. 나는 닭이 너무 징그럽고 싫은데 제사상에 올린 닭고기는 머리가 잘리지 않은 채로 있어서 보기 싫었다.
할머니 집에는 명절 때마다 모든 친척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음식을 먹은 뒤 씻어야할 설거지거리도 많다. 오늘은 작은 삼촌들이 설거지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엄마와 숙모들이 싱글벙글 웃었다.
방에서 추석 특선 영화를 보면서 쉬고 싶었지만 곧바로 어른들이 뒷산에 성묘를 간다고 했다. 가기 싫었는데 엄마가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오늘은 총 5곳의 조상님 묘지를 찾아서 인사를 드려야한다고 했다.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이거 봐라"하면서 발로 밤송이를 깠다. 엄마가 양발로 밤송이를 누르니 밤알이 튀어나왔다. 신기했다. 무성하게 자란 풀숲이 자꾸 몸을 찔러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후에는 윷놀이를 했다. 어른들끼리 하는 거라고 해서 나는 옆에 앉아서 구경만 했다. 특히 친할머니가 게임에서 이기고 있어서 엄청 좋아했다. 할머니가 저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오늘 아침부터 일찍 움직여서 몸은 피곤했지만 가족과 오순도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외할머니 집에 간다. 어서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성인으로 커버린 김XX씨, 요즘 추석은?
2023년 9월 29일
추석 아침은 예나 지금이나 바쁘다. 5년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할아버지는 홀로 거주할 집을 옮겼고, 추석 전날은 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모여 할머니집에서 하루 잠을 자던 일도 이제 없어졌다. 대신 추석 당일 새벽 일찍부터 할아버지 집을 향하는 게 요즘 추석 당일 모습이다.
편리한 세상이다. 어린시절 엄마와 숙모는 제사 음식을 마련한다고 추석 전날부터 바쁘게 보냈지만 이제 제사 음식은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어린시절 할머니와 조물조물 만들었던 송편마저 이제 '냉동 송편'으로 갈음한다. 딸의 입장으로 엄마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서 덜어서 좋지만 가끔은 옛날 그 시절의 추석나기가 그립기도 하다. 몸은 힘들었어도, 그때 그시절이 주는 감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아침 이른 시각 할아버지 집을 찾아 할머니 제사를 지낸 뒤 제삿밥을 먹었다. 추석 때 모이는 식구 규모도 확 줄었다. 명절에 함께 모였던 할아버지 형제들은 이제 각자의 가족끼리 명절을 보내기로 했고 우리 가족 역시 우리끼리 소박하게 명절을 보낸다. 왁자지껄, 북적거림에 사라져 옛날 만큼의 명절 느낌은 없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척으로 어색했던 분위기, 억지로 대화 주제를 이끌어내지 않아도 되는 건 좋기도 하다.
오후에는 근교로 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선 길, 모두들 어디로 이동하는지 도심 내 차가 꽉 막힌다.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다 1시간 만에 도착한 한 카페. 명절이라고 다들 가족과 함께 외출을 택했나보다. 커피 한잔하며 여유롭게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쳐다본다. 아빠와 삼촌은 다음 명절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내년에는 꼭 해외여행을 가자고 한다. 어릴 적부터 명절 때마다 친척집에 모이는 게 익숙했던 터라 해외여행을 떠나는 명절은 좀처럼 익숙하지 않지만 요즘 추세가 그렇기에 이상한 것도 아니다.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을 대비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갈 도로에 차를 올린다. 내일은 외가에 갔다 저녁엔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 할 예정이다. 명절이 아니면 이제 다들 시간 맞춰 고향에 모이기도 어렵다. 하루는 가족끼리, 나머지 날은 친구와 혹은 개인 시간으로…알맞게 명절을 보내고 연휴동안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요즘도 참 좋다.
동생은 이번 명절에 서울에서 내려오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만의 여행'을 떠난단다. 미리 부모님께 양해를 구해 지난주에 본가에 내려와 부모님 얼굴을 뵀고 이에 맞춰 휴가까지 썼다. 부모님도 '명절엔 가족이 모두 모여야 한다'는 부담에서 차츰 벗어나는 듯하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명절 귀성은 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됐다. 추석보단 '연휴'에 집중되는 요즘 명절. 재충전과, 개인을 위한 시간이다.
◆MMM팀의 미니 추석
명절 귀성은 이제 옛말이 됐지만 그럼에도 옛 명절 풍경은 정겨움을 불러일으킨다.
MMM팀은 요즘 개인화된 명절에 옛날 그 시절 분위기를 한번 느껴보기로 했다. 이른바 MMM팀의 '미니 추석'. 추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한 팀원의 자취방에 모여 송편을 만들고 윷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내보는데…
"송편, 방앗간 가야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한 팀원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송편은 쌀가루와 통단팥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었고 맛을 보장할 순 없었지만 오순도순 모여 앉아 함께 송편을 빚어본 행위 자체만으로 정겨움을 느꼈더랬다. 송편을 찌고 맛을 봤을 땐 박장대소가 이어졌다. 떡을 방앗간에 맡기는 이유는 알았다던 MMM. 열심히 송편을 무한 생산해낸 심헌재 기자는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했고 이연정 기자는 "요즘 명절에도 가끔 가족과 송편을 만들어봐도 되겠다"고 평을 했다.
MMM팀의 미니 추석 모습은 영상(인스타그램 @maeil_mz_magazine)으로 만나보시고 이번 추석, 간단한 송편 만들기로 가족과 추억 한번 쌓아보시길 강.력.추.천!
◆어김없이 떠오르는 공포…명절 잔소리 新대처법
명절 귀성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개인 일상에 집중하는 게 요즘 추석이라지만 그럼에도 가족끼리 모여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그런 이들이 겁내는 딱 한 가지가 있다는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명절 때만 떠오르는 주제. 명절 잔소리다.
이 명절 잔소리도 세월에 따라 레퍼토리가 바뀌었을까?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잔소리는 없다. 늘 옛날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잔소리가 이어져왔는데… 대신 옛날엔 그저 "예, 예"하며 잔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면 요즘 MZ세대들은 새로운 잔소리 대응법에 나선다.
일명 잔소리 메뉴판을 만들어 돈을 매기는 것!. 즉, 슬쩍 잔소리 할 기미를 보이는 가족들에게 잔소리 메뉴판을 보여주면서 돈을 내고 하라고 하면 된다.(진심 반, 장난 반으로 나온 이야기들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시길) 많게는 500만원까지 책정된 잔소리 가격에 가족들은 모두 입을 닫는다는 소문... 자자 우리도 잔소리 메뉴판 준비해보자.
댓글 많은 뉴스
이낙연 "민주당, 아무리 봐도 비정상…당대표 바꿔도 여러번 바꿨을 것"
'국민 2만명 모금 제작' 박정희 동상…경북도청 천년숲광장서 제막
위증 인정되나 위증교사는 인정 안 된다?…법조계 "2심 판단 받아봐야"
일반의로 돌아오는 사직 전공의들…의료 정상화 신호 vs 기형적 구조 확대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