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600가구 아파트 물탱크 동파이프가 사라졌다…소송전 나선 입주민들

물탱크 배관 공사 중 사라진 동파이프 837m
법원 하도급업체에 9천200만원 배상 판결…"상고 계획 없어"

비상용 물탱크로 향하는 동파이프가 사라진 모습. 입주자대표회의 제공
비상용 물탱크로 향하는 동파이프가 사라진 모습. 입주자대표회의 제공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800m가 넘는 동파이프 배관이 통째로 절도당한 일(2022년 2월 2일자)과 관련, 입주민들이 사건 관계자들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공사를 진행한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승소한 입주민들은 사건을 묵인한 아파트 관리소장에 대해서도 민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당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입찰을 통해 옥상 물탱크에 배관을 설치하는 공사를 A업체에 맡겼고, A업체는 지역 중장비업체에 하도급을 줬다.

문제는 그해 11월 공사가 끝난 뒤 드러났다. 기존 설계도와 달리 옥상 물탱크 배관(동파이프)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감정평가 결과 사라진 급수배관은 837m에 달했고, 피해액은 1억4천610만원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아파트 측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배관을 반출한 하도급업체 현장소장인 B씨와 이를 묵인한 아파트 관리소장 C씨를 고발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B씨와 C씨에 대해서 각각 절도와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주민들은 재산적인 피해 이외에도 여러 불편을 감내해야만 했다. 해당 배관은 지하 펌프가 고장 날 경우 옥상 물탱크를 비상용 물탱크로 전환하는 기능을 하는데, 배관이 도난당하면서 비상급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한 입주민은 "지난 7월에 지하 펌프실 배관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해 6~7시간 동안 1천600세대 주민들이 물을 하나도 못 쓴 적도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황당한 사건은 결국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따르면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김태천)은 지난 7월 아파트 입주민 등이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2심 소송에서 약 9천2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 인정된 5천200만원보다 배상액을 4천만원 늘렸다.

법원은 ▷설계도에서 잔존하도록 한 배관 중 일부를 절단하여 가지고 간 점 ▷배관 절단 부분에 맹플랜지(결합 부품)를 설치하지 않은 점 ▷공사를 진행하면서 옥상수조 등에 폐기물을 처리하지 않은 점 등을 들며 "피고는 원고에게 위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하도급업체 대표는 "상고를 제기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러나 B씨와 C씨가 배관을 빼돌릴 때 우리 회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며 "둘을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고소했으며 이미 검찰에 송치가 됐다. 응당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입주민들은 배관이 반출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은 아파트 관리소장 C씨에 대해서도 민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의 주범들에게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이번 민사소송 결과로 주민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렸다"라며 "입주민들의 믿음을 저버린 아파트 관리소장에 대해서도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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