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재경 교수의 수도원 탐방기] (6)생 모리스 수도원

순교 터 위에 세워진 영적 중심지…기도 소리 끊이지 않는다

생 모리스 수도원 외관
생 모리스 수도원 외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다. 유대교를 순교의 종교라고 하듯 기독교 역시 순교의 터 위에 세워진 종교다. 순교는 자기 존재를 온전히 바친 가장 숭고한 신앙의 행위이다. 하지만 순교자는 단지 신앙에 따른 행위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순교자는 고귀한 생명을 내준 그 희생을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성 지그문트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생모리스 장군의 유물함
성 지그문트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생모리스 장군의 유물함

◆신앙 때문에 순교의 길 걸어

생 모리스 수도원은 생 모리스(saint Maurice)와 동료들의 순교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300년경 북아프리카 테베에서 온 로마 군인들이었다. 이집트로부터 온 테베군단은 이탈리아로 보내졌다가 알프스를 넘어 남쪽 스위스인 아가우눔(agaunum)에 도착했다. 아가우눔은 갈리아어로 '뾰족한 바위'를 의미했는데, 순교가 일어난 후 '거룩한 도시'로 불렀고, 결국 생 모리스로 이름을 바꿨다.

테베군단은 겨울 동안 로마의 국경선인 아가우눔을 잘 지켰다. 그런데 느닷없이 막시미아누스(Maximianus)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 테베군단의 군인들도 로마시민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신에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테베군단의 기독교인들은 황제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러자 황제는 기독교 군인 열 명 가운데 한 명씩 제비뽑아 살해하기 시작했다. 테베군단의 기독교 신자들은 전장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신앙 때문에 순교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생 모리스 수도원 지하묘지
생 모리스 수도원 지하묘지

리옹의 주교 에우케리우스(Eucherius)에 의해 전해진 생 모리스 장군의 편지는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황제여 우리는 당신의 군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우리의 미덕을 당신께 바치고, 우리의 흠 없는 생명은 하나님께 바칩니다. 당신은 우리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고, 하나님은 온 세상에 생명을 주셨습니다." 생 모리스는 이 말을 남기고 테베군단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순교했다.

생 모리스와 동료군인들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교의 소식을 들은 지역 기독교인들이 비밀리에 그들의 무덤을 찾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곳을 찾아 순교자들을 숭배했다. 생모리스는 유명한 기독교 순교성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380년 테오도르(Theodore) 주교는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 작은 교회를 짓게 했다. 생 모리스교회에 평신도 수도승들이 찾아왔고, 지역 성도들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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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을 숭배하는 영적 중심지

515년 부르고뉴 왕 지그문트(Sigismund)는 생모리스에 수도원을 건립하고 기존 교회를 확장했다. 생모리스 수도원은 드디어 순교자들을 숭배하는 영적 중심지가 되었고, 수도승들과 순례자들의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곳은 12세기 초까지 평신도 수도원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1128년 아마데우스 3세가 평신도 수도원을 포기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가입했다. 오늘날까지 생 모리스 수도원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 규칙에 따른 수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1627년 생 모리스 수도원 교회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 바위틈에서 지금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카롤링거 시대의 성가대,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을 세웠다. 18세기에 수도원 건물은 다시 건축되었다. 이후 1946년부터 1949년 사이에 건축가 클로드 자코테(Claude Jaccottet)가 종탑과 신랑 일부를 다시 건축했고, 건물 전체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지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이 되었다. 수도원 건축은 '초월'과 '변하지 않는 진리'의 개념에 따라 지은 전형적인 기독교 양식이다.

레만(Leman) 호수를 거쳐 알프스의 고봉 사이 깊은 골짜기를 향해 달리자 론강에 둘러싸인 작고 아담한 마을이 나왔다. 생 모리스였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 같았다.

수도원은 출입문.출입구 바깥 면에는 승천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순교자 테베군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안쪽 면엔 초대교회부터 현재까지 순교한 272명의 이름이 금속판에 27개 언어로 새겨져 있다.
수도원은 출입문.출입구 바깥 면에는 승천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순교자 테베군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안쪽 면엔 초대교회부터 현재까지 순교한 272명의 이름이 금속판에 27개 언어로 새겨져 있다.

수도원 건물과 수도원 교회는 압도적이지 않았다. 수도원은 거대한 바위산으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 같았다. 그러나 수도원 종탑은 바위산을 뚫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었다. 수도원은 출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다. 생 모리스 수도원의 1500년 역사가 수도원 출입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출입구 바깥 면에는 승천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순교자 테베군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출입구 안쪽 면엔 초대교회부터 현재까지 순교한 272명의 이름이 금속판에 27개 언어로 새겨져 있었다.

◆영속 시편기도 탄생

우리는 곧장 아프리카 테베군단의 순교 장소를 찾았다. 출입구에 들어서자 전시 공간이 나왔고, 그곳을 지나 서쪽을 향해 올라가, 남쪽 복도를 지나자 순교의 터가 나왔다. 처음 예배당을 지었던 장소다. 중세가 시작될 무렵엔 이곳 남서쪽의 거대한 바위산 아래에 순교자의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 위에 작은 교회가 있었다.

거대한 바위산 아래에 순교자의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 위에 초기 교회가 있던 자리.
거대한 바위산 아래에 순교자의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 위에 초기 교회가 있던 자리.

지금은 바위를 깎아 만든 몇몇 순교자의 무덤, 주춧돌로 사용됐던 흩어진 돌무더기가 순교의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바위 위에 서서 순교의 터를 내려다보며, 그들의 영혼이 아직도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 이곳에 묻힌 순교의 영혼들은 사람을 불러 모아, 교회와 수도원을 건축하게 했고, 알프스의 깊은 골짜기를 '기도의 성지'로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속 시편기도(perpetual psalmody)'가 여기서 태어났다. 이곳에 모인 평신도 수도승들과 순례자들은 밤낮 쉬지 않고 기도했다. 이들은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일 년 365일, 한순간도 중단 없이 돌아가며 기도를 이어갔다. 때론 그곳의 수도승들이 수십 명씩 그룹을 나누어 찬송을 부르며 시편을 낭송했다. 이 기도를 서방교회는 '끊임없는 기도(Laus perennis)', 동방교회는 아코에메타에(Acoemetae)라고 했다. 생모리스 수도승들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이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단언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 지워진 존재'임을 깨달았던 것일까. 이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기를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과 관계 속에 머물러 있기를 쉬지 않았다.

◆순교 예배당은 생명의 빛으로 가득

순교자의 터를 돌아 수도원 경내로 들어서자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이 눈에 들어왔다. 웅장하지도 근엄하지도 않은 아담한 회랑. 닳고, 깎인 회랑 바닥의 돌이 세월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회랑 안뜰은 정사각형이었고, 그 중앙엔 작은 분수가 있었다. 회랑 안뜰의 정사각형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정사각형의 1:1 비율은 기독교 우주론에서 "완벽"을 나타낸다.

생 모리스 수도원 회랑 안뜰의 분수대
생 모리스 수도원 회랑 안뜰의 분수대

정사각형의 기하학적 비율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동일성' '평등성' '일치성' '영원성'을 드러낸다. 회랑 중앙의 분수에서 흐르는 물은 창세기 2장에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신 물', '세례의 물'로 '생명을 살리는 물' '거듭나게 하는 물'을 상징하고 있다. 물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물은 진리처럼 여겨진다. 이곳 수도승들은 회랑을 거닐며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갈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고자 그분의 속성을 수없이 되새겼을 것이다.

수도원 회랑을 돌아 순교자의 예배당 가는 길에 잠시 유물관을 들렀다. 유물관은 뉴 바로크(neo-Baroque) 양식의 챕터 하우스 아래 있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혼합한 유물관은 희귀한 유물로 가득했다. 생모리스와 함께 순교한 순교자들의 유물뿐 아니라 각지에서 보내온 중세의 걸작들이 전시돼 있었다. 어떤 유물은 베들레헴에서, 어떤 유물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 정상에서 왔다. 고귀하고 거룩한 유물, 위엄과 아름다움을 갖춘 건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생모리스 수도원의 유물
생모리스 수도원의 유물

생 모리스 수도원 순교 예배당,제단이 있어야 할 곳엔 빛으로 장식된 십자가만 있다.
생 모리스 수도원 순교 예배당,제단이 있어야 할 곳엔 빛으로 장식된 십자가만 있다.

순교 예배당은 크지 않았다. 예배당엔 12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고, 제단이 있어야 할 곳엔 빛으로 장식된 십자가만 있었다. 바깥 창문엔 테베군단의 유혈학살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의 검붉은 색이 시선을 자극했다. 이곳은 순교자들을 기리고, 쉬지 않고 기도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장소다. 빛으로 장식된 십자가, 유혈학살을 묘사한 붉은 스테인드글라스. 그러나 순교 예배당은 생명의 빛으로 가득했다.

이곳에 묻힌 테베군단의 순교자들은 단지 기억으로 존재하거나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도원을 걸어 나오며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의 말이 떠올랐다. "성인(순교자)들의 삶은 추상적 지식이 아니라 영적인 감동을 주고, 본받도록 영감을 준다."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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