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內戰) 같은 대통령 선거였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0.73%포인트였다. 선거가 끝난 지 일 년이 넘었으나 전쟁보다 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반대편을 반체제 세력이라 몰아붙인다. 야당 대표는 이에 저항한다며 급기야 곡기를 끊고 드러누웠다. 여의도의 살풍경이다. 두 개의 거대 정당이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한국 정치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선거제도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이분법적 정치를 증폭하는 역사 구조가 켜켜이 쌓였다. 친일과 반일, 좌와 우, 남과 북, 민주와 반민주,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담을 높이 치고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낸 지 오래다.
모든 정치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지난 대선 중에 윤석열은 안철수와 공동정부 협약을 맺으면서, 이재명은 김동연과 단일화 협약을 하면서 해법을 내놓았다. 흑백 정치, 이분법 정치를 넘어서겠다는 약속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에도 여러 차례 거듭되었다. 가장 중요한 해결의 열쇠는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그러나 별 진전은 없었다. 정치인이 자기 머리를 깎는 것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명맥만 유지했다.
벌써 가을이다. 내년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될 선거제도 개혁은 이미 기한을 넘겼다. 법에서 정하기로는 지난 4월까지 선거구 획정을 끝내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지역구 수, 의원 정수 등을 정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다음 달 12일까지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확정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2+2 협의체를 구성하여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했는데 최근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의견을 모으고 각 당에서 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을 추동하던 전문가, 정치인, 시민사회운동가들은 이 안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과거에 쓰던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병립'하는 것으로 비례성과 다양성에 미치는 효과가 아주 낮고 양당 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선거제도라고 본다. 주목할 점이 있다면, 비례 배분을 권역별로 함으로써 정당의 지역 독점 체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의 숫자를 대폭 늘린다면 권역별 배분을 통해 그런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있겠다. 그렇더라도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며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소수파가 진출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 안은 국힘이 주장하던 병립형 안과 민주당이 주장하던 권역별 안을 절충,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타협안은 두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 유지, 보장되는 범위에서 해결책을 찾자는 취지이다. 현재 두 당이 의견을 모아 내놓은 '소선거구제+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두 당의 밀실 야합, 혹은 선거제도 짬짜미라고 비판하는 까닭이다. 비례성, 대표성, 다양성 강화라는 선거제도 개혁의 목표 가치에서 보면 두 당의 합의안은 가당치 않다는 얘기다.
현행 선거구제가 '소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이 제도는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뽑고,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의석수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에서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채워 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선거제 개혁의 목표 가치를 잘 구현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거대 양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어서 기득권 지키기에 이용하여 그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국힘과 민주당이 의견을 모은 '소선거구제+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보다는 현행 '소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더 바람직해 보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려 두고 향후 그것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통제 장치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도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보전하는 선거제도 개혁에서는 '밀실 야합' 혹은 '짬짜미'라고 비판받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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