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진 취업문에 가족·친지와 보내는 추석 연휴는 언감생심인 사람들이 있다. 좁아진 취업문에 심리적 부담이 커진 취업준비생들이다. 대기업 절반 이상이 채용계획이 없고 공공분야 취업문마저 좁아져 심리적 부담이 커진 가운데 이들이 찾는 도서관과 스터디카페에서는 추석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27일 오전 11시쯤 방문한 대구의 한 대학교 도서관 앞은 두꺼운 전공 서적을 들고 드나드는 인파로 붐볐다. 내부로 들어서자 칸막이가 둘러진 부스 안에 학생들이 노트북과 태블릿 등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바쁘게 필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은 넓은 책상에 둘러앉아 서로 퀴즈를 내고 푸는 등 공부 모임을 하고 있었다.
6일 동안 이어지는 황금 연휴에도 청년들은 학교 시험과 취업 준비로 바빴다. 분야를 막론하고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줄이는 분위기 속에, 연휴를 반납하고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엿보였다.
휴게 공간으로 마련된 교내 카페에서조차 책을 펼쳐두고 부지런히 메모하는 학생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이들은 오전에 편의점에서 사 온 김밥과 커피로 끼니를 때우고 오후까지 앉아 공부했다.
대학원에 다니며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 김모(27) 씨는 "취업하기 위해서는 남은 학기 과제를 마무리하고 시험을 잘 봐서 제때 졸업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젠 나이도 있는데 명절 때마다 용돈을 받기도 눈치가 보인다. 친척들에게는 인사만 드리고 연휴에도 계속 공부하려한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두고 1년 동안 취업준비를 해왔다는 윤혁준(27) 씨는 "금융공기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다음 달부터 필기시험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며 "추석 연휴가 6일이나 되는데 이 기간동안 마냥 쉴 수는 없다. 고향인 제주에 내려가긴 하지만 이틀 정도는 쉬고 나머지 4일은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28일 오전 11시쯤 찾은 대구 수성구의 한 스터디 카페 역시 엿새간의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지만, 연휴를 즐길 새 없이 책과 씨름하는 이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휴게실에서 만난 정윤지(27) 씨는 "2년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비슷하겠지만, 취업준비생에게 명절은 꼭 즐거운 날만은 아닌 것 같다"며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는 평소에 공부하던 방식대로 연휴를 보낼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난 3월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이상윤(28) 씨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졸업한 탓에 취업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올해는 기본적인 자격증부터 따놓으려고 한다"며 "연휴라고는 하지만,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공부하러 나오는 게 마음이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휴를 반납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배경에는 주요 기업들이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취업 문턱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3년 하반기 대졸 신규 채용 계획' 조사 결과를 실시한 결과 대기업 10곳 중 6곳은 채용계획이 없거나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한 기업은 전체의 35.4%였으며, 이 중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채용을 유지하겠다는 기업은 57.8%였다. 줄이겠다는 기업은 24.4%인데 비해 늘리겠다는 기업 비율은 17.8%에 불과했다.
공공기관 역시 정규직 신규 채용 인원을 줄이고 있다. 지난 2월 정부는 올해 공공기관 채용 목표를 2만2천명 수준으로 잡았으며 이는 지난해보다 4천명쯤 줄어든 수치다. 연도별 공공기관 신규 채용 규모는 2017년 1만9천862명에서 2021년 2만6천554명까지 늘었지만 지난해 2만6천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201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취업문에 청년들의 심리적 부담은 크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20~40대 성인남녀 114명을 대상으로 '명절 열공족의 학습 계획'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휴에도 공부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은 '3~4시간 공부하겠다'(29.4%)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이어 ' 5~6시간 공부하겠다'(25.5%), '2시간 이하'(23.5%), '7시간 이상 공부하겠다'(21.6%) 등이 뒤를 이었다.
적잖은 청년들이 오늘도 스터디카페나 독서실로 발걸음을 옮길 전망이다. 공기업 인턴 계약기간이 약 3개월정도 남은 A(28) 씨는 "평소 연락을 잘 하지 않던 친척들이 명절에 만나 근황을 물으니 대답하기 곤란할 때가 많다. 추석 연휴 공부가 결국 하반기 채용 합격에 보탬이 될 거라 보기에 이번 연휴는 공부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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