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관습적으로 진행됐던 차례, 벌초, 성묘 등이 간소화되거나 없어지고 있고, 친척들끼리 모이는 자리조차 줄어들고 있다. 대신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나만의 휴식시간을 갖는 사람들은 급증하는 추세다.
수도권에서 직장을 다니는 안재엽(33) 씨는 이번 연휴 기간 동안 고향인 대구 방문 대신 집에서 쉬는 것을 택했다. 그는 "연휴라고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친척을 뵙는 것도 사실 일이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쉬고 싶어 지난 주말에 미리 부모님을 뵙고 왔다"며 "어릴 적에는 사촌들과도 친하게 지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안 보기 시작하니 경조사 외에는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끼리 모이더라도 차례 등 전통 유교문화를 따르는 집은 줄어들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 4일부터 이틀간 20~50대 소비자 4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56.4%로 차례를 지낸다는 응답자(43.7%)보다 많았다. 세대가 바뀌면서 차례에 대한 중요성이 떨어졌고 코로나19가 이를 가속화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40대 주부인 김 모 씨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음식 준비로 명절 연휴 3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지난해부터 시댁 어른들이 추석 차례를 없애자며 '대승적 결단'을 내려준 덕에 시집온 후 처음으로 여유로운 명절 연휴를 보냈다"며 "이제는 가족들끼리 국내·외로 여행을 가거나 한 끼 외식을 하는 것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추석 풍경이었던 벌초와 성묘도 점차 사라지는 분위기다. 지금껏 추석 당일 차례 후 또는 벌초를 한 뒤 성묘를 지내왔지만 이마저도 간소화 한 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신 벌초 대행업체들이 성황을 누리고 있고 봉안당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산림조합중앙회 대구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올 추석에 24개 시·군·구 회원조합은 약 1만500건의 벌초 대행 서비스를 진행했다. 지난 8월 한 달간 신청을 받기 시작해 1만여 건이 금세 마감됐고, 9월에 조합별로 500건의 추가 접수를 더 받았다. 산림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5년간 전국 벌초 대행 서비슬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있다"고 설명했다.
산소를 파묘한 뒤 유골을 수습해 화장하는 '개장 유골 화장'도 인기다. 보건복지부에 다르면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2011년 4만4천328건에서 2021년 6만7천721건으로 52.8%나 증가했다. 윤달이 있었던 2020년에는 13만9천841건에 달하기도 했다.
최근 개장 유골 화장을 진행했다는 50대 박모 씨는 "집은 대구지만 선산은 경북에 있어 자주 찾아뵙기도 어렵고 산소 관리도 힘이 들었던 게 사실"이라며 "나까지는 관리를 하겠지만 자식들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근처 봉안당에 모시고 자주 찾아뵙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향후 명절 연휴의 의미와 모습들이 더욱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요즘에는 경북 안동의 종가집조차 합동 성묘를 지내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고유의 문화를 지켜나갈 방법 역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음식을 많이 차리는 것이 '효(孝)'를 드러내는 행위였다면 요즘에는 여행이나 색다른 경험을 함께하는 것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명절의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바뀌겠지만 결국 조상, 부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갖는 시간이라는 점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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