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정민 기자의 '니하오, 항저우'] 아시안게임 취재기, 항저우에서의 하루


취재진이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동안 숙소로 사용한 진마 팰리스 호텔 전경. 채정민 기자
취재진이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동안 숙소로 사용한 진마 팰리스 호텔 전경. 채정민 기자

'따르릉' 소리에 잠을 깬다. 28일 오전 6시(현지 시간) 중국 항저우 진마 팰리스 호텔. 일어나긴 버겁다. 그냥 옆으로 몸을 뒹굴뒹굴. 침대 옆 전화기로 다가가 수화기를 집어든다. 나긋한 목소리의 한 누님(나이에 관계 없이 내게 잘해주면 누님)이 영어로 뭐라 한다. 일어나란 소리다. 호텔에 모닝콜(웨이크업 콜)을 부탁해뒀더니 오전 6시에 '칼같이' 전화해준다.

몸이 무겁다. 쌓였던 피로가 남아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 후 엿새째. 잠시 눈만 감고 있자 하다가 일어난다. 이러다 제때 못 나간다. 씻고 호텔 뒷동네 산책에 나선다. 정신이 돌아와야 한다. 발걸음이 무겁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부산일보 김기자와 7시에 호텔 로비에서 접선. 로비 한쪽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평소대로라면 밥 대신 잠을 선택한다. 하지만 여기서 아침 식사를 거를 순 없다. 이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취재를 다녀왔던 경험에서 나온 습관이다. 하루 4~5시간씩 차를 타고, 10시간 넘게 버티려면 억지로라도 입에 욱여넣어야 한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는 게 좋다. 제 시간에,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이때뿐이다.

인간이 참 간사하다. 잠이 더 필요한데 막상 음식을 보니 또 군침이 돈다. 워낙 아무 거나 잘 먹는 탓일 게다. 휴대전화로 오늘 경기 일정을 살피면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커피 두 잔을 입에 들이붓는다. 한국인과 커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누군가 그랬던 듯하다. 한국인은 일을 많이 해 피로를 견디려고 그렇게들 커피를 많이 찾는 거라고. 지금이 꼭 그 짝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셔틀 버스 터미널. 채정민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 셔틀 버스 터미널. 채정민 기자

다행히 오늘은 오전 일정에 여유가 있다. 애초 중국과의 'LoL' 준결승전을 보려 하다 마음을 접었다. 경기 자체보다 경기장 분위기가 보고 싶었다. '페이커' 이상혁의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다른 종목들처럼 일방적으로 중국인들이 자국 팀을 응원할까 궁금했다. 하지만 경기 시작이 오전 9시다. 셔틀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려면 최소한 오전 7시에 호텔을 나서야 한다. 아쉽지만 포기다.

일단 호텔에서 1시간가량 셔틀버스를 타고 메인프레스센터로 향한다. 여기서 일정을 확인하고 필요한 정보를 챙긴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셔틀버스 터미널로 이동, 원하는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타야 한다. 우선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수영의 메달 소식, 불모지란 악조건을 딛고 은메달을 따낸 럭비팀의 귀국 얘기를 정리했다.

오후엔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는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으로 갈 참이다. (구)본길이 형님(나이에 관계 없이 잘 하면 형님)이 출전한다. 같은 대구 출신이라 더 눈길이 간다. '3대3' 농구 대표팀의 한일전이 보고 싶지만 시간이 겹친다. 시간이 살짝 남는데 어딜 가기가 애매하다. 일단 오전 경기 결과도 다시 챙긴다. 'LoL' 준결승전에서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준결승 한국과 중국전 결과 보고서. 채정민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준결승 한국과 중국전 결과 보고서. 채정민 기자

오후가 되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럴 땐 분위기를 바꾸는 게 상책. 펜싱이 열리는 곳으로 이동해 남은 기사를 정리하기로 한다. 짐을 싸서 나선 순간 '아차' 싶다. 배차 간격이 매 시간 정각인 코스인데 시간이 현재 오후 2시 54분이다. 셔틀버스 터미널까진 걸어서 12분 거리. 어젠 이 거리를 뛰어서 5분 만에 도착, 럭비 7인제 결승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력 질주에도 실패. 지쳤나 보다. 검색대를 통과했는데 버스가 서 있어야 할 곳에 아무 것도 없다. 오후 3시 2분. 다음 차가 출발하기까지 58분을 기다려야 한다. 덥고 습한 데 죽을 맛이다. 주변 버스가 내뿜는 매연을 맡아가며 마냥 서서 기다릴 순 없다. 이럴 땐 급히 다른 경기를 검색, 빨리 가는 버스를 타는 게 차선책이다.

28일 오후 3시 2분 항저우 셔틀버스 터미널. 12번 구역에 있어야 할 펜싱장행 버스는 이미 떠났다. 채정민 기자
28일 오후 3시 2분 항저우 셔틀버스 터미널. 12번 구역에 있어야 할 펜싱장행 버스는 이미 떠났다. 채정민 기자

다행히 옆에 수영장 가는 버스가 3시 30분에 출발한다. 일단 탔다. 시원하다. 노트북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려두고 기사를 정리한다. 마침 한국 선수들의 경기도 있다. 한데 출발 시간이 지나도록 버스 기사가 안 보인다. 그 와중에 펜싱 경기장 가는 버스가 다시 들어온다. 짐을 다시 싸 그 버스로 옮겨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 안이 시원하니 견딜 만하다.

오후 4시 출발. 잠시 눈을 붙여 보려는데 주변이 시끄럽다. 중국말 대화가 오가는데 고함을 지르는 것 같다. 덮었던 노트북을 다시 펴지만 버스가 흔들려 작업이 어렵다. 40분 뒤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 도착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경기가 열리는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의 미디어 라운지에서 속을 채워준 간식들. 채정민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경기가 열리는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의 미디어 라운지에서 속을 채워준 간식들. 채정민 기자

검색대를 통과, 취재석을 찾아 들어간다.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전 결승이 열리려면 한참 남았지만 책상이 있는 곳은 빈자리가 없었다. 일반석에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미디어 라운지에 있던 커피와 간식으로 빈 속을 채웠다.

오후 6시 결승전이 열린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공동취재구역에서 선수들의 소감을 듣곤 한다. 그 과정을 얼른 거치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오후 7시 30분부터 수영 각 종목 결승전이 열린다. 한국이 메달을 추가할 종목이 여럿이다. 경기가 끝나고 메인프레스센터로 돌아오면 또 10시가 넘을 모양새다. 간단히 정리 후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면 자정에 가까울 것이다. 일찍 자긴 글렀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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