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초 사찰인 흥륜사 터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일고 있다.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인 '경주 흥륜사지'에서 '靈廟寺'(영묘사)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나온 탓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따르면 흥륜사(興輪寺)는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완공된 신라의 첫 국가적 사찰이다. 학계에선 황룡사·사천왕사 등과 함께 신라 최대 규모의 사찰로 역할을 하다가 조선 초쯤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63년 정부는 지금의 '경주 흥륜사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5호로 지정했다. 근거는 일제강점기 조사 자료였다.
1910년대 일본인들은 경주지역 절터를 조사하면서 지금의 사적지를 흥륜사 터로 추정했다. 당시에도 경주 사람들은 이곳 일대를 '흥륜원'이나 '흥륜들'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사적 지정 이후 이곳에선 흥륜사가 아니라 영묘사 자리로 추정할 만한 유물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문화재청은 '경주 흥륜사지' 서편에서 출토한 '영묘사'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을 공개했다. 앞서 1976년에도 이곳에서는 '영묘지사'(靈廟之斜), '대영묘사조와'(大令妙寺造瓦)란 글씨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나왔고, 이후 두 차례 발굴조사에서도 '영묘사'를 새긴 기와가 잇따라 출토됐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학계와 지역에선 '경주 흥륜사지' 명칭을 '영묘사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또 다시 '경주 흥륜사지'에서 '영묘사' 명문 기와가 발굴되면서 이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흥륜사 터는 어디였을까.
학계는 실제 흥륜사 터를 '경주 흥륜사지'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경주공고 자리로 추정한다.
2009년 경주공고 마당에서 '興'(흥) 자가 새겨진 신라시대 수키와 조각이 나온 게 주요 근거다. 이 당시 경주공고에서는 '寺'(사) 자만 남은 기와 조각도 함께 출토됐다.
'삼국유사'에서 흥륜사가 '미추왕릉 서쪽이자 금교의 동쪽'에 있다는 내용과도 맞아 떨어진다. 금교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주공고 서쪽으로 형산강이 흐르니 다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간 혼란도 컸다. '신라의 미소'란 수식어로 널리 알려진, 보물 제2010호 '얼굴무늬 수막새' 사례가 대표적이다.
흥륜사지는 얼굴무늬 수막새 출토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수막새 출토지가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흥륜사지'를 말하는지, 실제 흥륜사가 있었던 곳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학계 한 관계자는 "지금의 사적지를 영묘사 터로 볼만한 근거는 충분한 만큼, 하루 빨리 명칭 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다만 경주공고 자리를 흥륜사지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선 추가 조사를 벌이는 등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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