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수술실 CCTV 의무화

우상현 W병원장

우상현 W병원장
우상현 W병원장

울릉도에 거주하는 50대 남자 환자 A씨는 손가락이 아파 개인 의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서 비수술적 치료를 받았다. 그래도 낫지 않아 경기도 한 병원에서 '하키나이프' 비보험 시술로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필자 병원에서 '방아쇠 손가락' 증후군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은 끝에 지긋지긋한 손가락 통증에서 해방됐다.

자신의 병이나 통증이 비수술적 방법으로 나을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 환자들의 당연한 심정일 것이다. 이 환자의 경우도 한 번에 10만~20만 원 상당의 보험 급여가 되지 않는 여러 종류의 주사를 맞았다. 또한 비보험 시술로 치료비 120만 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필자의 병원에서 실시한 방아쇠 손가락 수술 수가는 8만5천80원이다. 입원 시 수술에 대한 환자 본인 부담금은 이 금액의 20%에 불과하다.

질병이나 외상의 상태가 수술을 해야 완치될 수 있음에도 수술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환자들은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수술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는 일부 의료진의 말을 믿고 먼 거리를 찾아가 수술비의 10배가 넘는 진료비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MRI 검사비보다 싸고, 비수술적 주사 치료보다 훨씬 싼 수술비를 받으면서, 그리고 수술로 인해 만에 하나라도 생기는 합병증이 발생하면 수백만~수천만 원을 물어줄 각오를 하면서 수술해 줄 의사가 앞으로 과연 있을까 반문해 본다.

요즘 의료계의 화두는 '의료기관 수술실 내 CCTV 설치'이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지난 9월 25일 시행됐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의협에 가입된 의사 1천2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5.7%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따라 수술실을 폐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제기되는 의료인들의 우려도 많다.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 잠재적 범죄자 인식 발생, 진료 위축, 소극적 진료 야기 등이다.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되어 수술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를 받으면서 수술해야 한다면 영리하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젊은 의사들은 당연히 수술을 기피하고, 비수술적 방법으로 치료하려는 의사는 늘어날 것이다. 정부 당국은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 2년간 준비 기간을 줬다고 하지만 정부 당국은 이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외과 기피 현상의 심화로 인한 필수 의료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2년 동안 어떤 고민과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환자를 위해 꼭 필요한 수술적 치료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의사에 대한 불신과 감시가 강화되는 상황에 수술비가 검사비나 비수술적 치료비보다 더 낮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의사들은 수가 제한을 받지 않는 비보험 시술이나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진료 과목으로 전문 분야를 찾으면서 각자 살길을 찾을 것이다.

결국 생명을 다투는 응급 수술을 하는 의사, 밤낮 공휴일 관계없이 발생하는 절단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삶의 질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우려된다. 사명감만으로 그들의 희생을 강요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데도 현재의 의료 체계가 앞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것 같다.

특히 응급의료 체계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수술실 CCTV 설치 운영이 시작되는 이 시기에 정부 당국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외과계 기피 현상의 심화로 인한 필수 의료의 붕괴를 방지할 적절한 대책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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