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오산 정상에 새겨진 '후망대'는 고아읍 출신 고산 황기로 선생의 글씨로 밝혀져

세밀한 연구 위해 탁본 제작도 실시
약사암 주지 대혜 스님, 최근 수백년간 말로만 전해지던 '후망대' 글자 발견

김장호 구미시장이 지난 2일 금오산 정상을 찾아 고산 황기로 선생이 새긴
김장호 구미시장이 지난 2일 금오산 정상을 찾아 고산 황기로 선생이 새긴 '후망대(堠望臺)' 각자(刻字)를 살폈다. 구미시 제공
지난 2일 연민호 서예가 등은 금오산 정상에서
지난 2일 연민호 서예가 등은 금오산 정상에서 '후망대'의 세밀한 연구를 위해 탁본 제작을 실시했다. 이영광 기자

수백 년간 금오산 정상 바위에 새겨져 있었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조선시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선생이 새긴 글자인 후망대(堠望臺)가 최근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그동안 조선시대 여러 문인의 문집에서 '후망대' 글자가 새겨진 것이 이야기로 전해져 왔지만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최근 약사암 주지 대혜 스님이 금오산 정상 현월봉 표지석 앞에서 바위에 음각한 후망대 글자를 발견했다.

후망대는 조선시대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로 초서(草書)의 대가로 알려진 구미시 고아읍 출신 고산 황기로(孤山 黃耆老) 선생의 글씨로 전해진다.

발견된 글자는 '높은 곳에 올라 멀리 살펴보다'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유금오산록', '망금오산유감', '봉촌집' 등 오래전부터 조선시대 여러 문인의 문집에 금오산 경관과 함께 언급됐었다.

또한 1872년에 제작된 지도에서는 현재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을 '적의 동태나 주변 상황을 살피는 장소'의 의미를 담은 후망대로 표기됐다.

후망대 글씨가 있는 곳은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금오산 정상에 설치된 통신기지 구역에 위치해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다. 또한 2014년에 개방됐지만 마모 등으로 이를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현재는 후망대 글자 중 후(堠) 자와 대(臺) 자가 많이 마모돼 있는 상황이다.

구미시는 글자 보존을 위해 우회 등산로 개설, 관련 전문가 자문을 통한 경화처리 등 보존 대책을 검토해 나갈 방침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지난 2일 연민호 서예가 등과 함께 금오산 정상을 방문해 세밀한 연구 등을 위한 탁본 제작을 실시했다.

한편 고산 황기로 선생의 초서풍은 조선 중기에 큰 영향을 줬고, 세속을 멀리하고 유유자적하던 삶 때문에 당대 및 후대인들로부터 큰 동경을 받았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조선시대 많은 문집과 고지도에 후망대가 명산 금오산 정상에 있다는 것이 기록돼 있어 지역민들과 향토사 연구자들은 늘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며 "이 각자를 살펴보니 오랜 세월 동안 마모돼 글자 일부가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깝지만, 앞으로 이를 보전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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