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문예진흥원 출범 1년

이연정 문화체육부 기자

이연정 문화체육부 기자
이연정 문화체육부 기자

지난해 10월 1일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이 출범했다. 문화예술회관과 미술관, 콘서트하우스, 오페라하우스부터 문화재단, 관광재단, 공립 박물관들까지 한데 모은, 대형 문화기관의 탄생이었다.

당시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는 대구 문화예술계의 시선이 기대나 우려도 아닌 의문과 무관심이었다는 점이다.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왜 만든 거래요?" 현장에서 만난 예술인들은 오히려 기자에게 되묻기 일쑤였다. 조직 혁신과 효율성, 기관 간 융복합과 같은 기치는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기관 설립의 이유를 설명하기엔 너무나 약했다.

또 다른 기억 하나. 출범 딱 반년째 되던 지난 4월, 우연히 경남의 한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를 읽다가 발견한 부분이다. "실제 최근 문예기관을 통합하고 재단화한 대구의 경우 문화예술보다는 경영·행정에 방점을 둔 운영으로 업무 환경이 악화하고, 대우 역시 크게 나빠져 전문 인력들이 속속 떠나는 등 사실상 '초토화'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사를 읽은 기자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외지에서 바라보는 평가였기에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지역 내부는 오죽할까. "통합 이후 예술인들이 모여 대구 문화의 현황을 짚어보거나,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대구미술관은 이제 설립 10년을 넘어가며 자리를 잡고 안정화되는 시기인데, 이렇게 관장 공석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 "광주, 인천 등 문화예술 선두 도시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비전을 제시하거나 경쟁력을 크게 마련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쓴소리만 있는 건 아니다. 신설된 박물관운영본부에 대해서는 칭찬이 이어졌다. 향토역사관, 근대역사관, 방짜유기박물관 등 공립박물관은 기존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시민도 많았다) 정부의 공립박물관 평가 인증도 받지 못할 만큼 열악했다. 그러나 이제는 특별기획전과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이 상시 운영되며 지난해 방문객 수의 2배를 웃돌 만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물론 문예진흥원이 유례없는 막대한 규모의 조직이기에 부족한 점도 있었을 것이고,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없어도 물밑에서 쉼없는 발길질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이제는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답을 분명히 내놓을 때다.

김정길 문예진흥원 원장은 지난해 취임 후 가진 인터뷰에서 "2년이란 짧은 임기로 욕심 섞인 목표를 완성하는 것은 힘든 일이나, 문화도시 50년 꿈의 씨앗을 뿌릴 밭고랑 정도는 파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밭고랑은 처음 낼 때 방향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물이 잘 빠지지 않거나 작물이 바람을 견디지 못한다.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직접 농사 짓는 이들의 얘기를 새겨듣는 수밖에.

문예진흥원 출범 1년을 맞아 각 분야 예술인들과 함께 지역 문화예술의 방향성, 정체성에 대한 논의의 장이 펼쳐지길 희망해 본다. 1년간 조직 정비와 산하 기관별 강점 파악 및 약점 보완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좀 더 큰 틀에서 출범 초기 내세웠던 비전과 목표를 다시 점검하고, 지역 예술인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앞서 쓴소리를 뱉은 지역 예술인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그래도 대구는 오랜 기간 미술, 연극, 뮤지컬 할 것 없이 국내 문화예술의 전반을 이끌어온 저력이 있고, 그것을 믿는다고. 이들의 희망이 빛을 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예진흥원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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